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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자아도취 ‘조조의 길’ 걷는 윤 대통령 [세상읽기]

등록 2023-12-01 07:00수정 2023-12-01 10:12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와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하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와 관련해 대국민 담화를 하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김종대│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10월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11월 부산 엑스포 유치전 과정을 보면, 국정을 수행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특징이 나타난다. 자신이 고립될 수 있다는 위기를 전혀 인식하지 못한다는 거다.

국민의힘이 17%포인트 넘는 큰 격차로 패한 보궐선거 직전까지 윤 대통령은 이기거나 박빙 승부로 믿었다는 보도가 눈에 띈다. 부산 엑스포의 경우도 국제박람회기구 총회에서 투표가 진행되던 지난 28일 윤 대통령은 무난히 부산이 1차 투표를 통과할 것으로 믿었다. 정부 확신에 영향을 받은 언론은 부산의 100만평 행사장 부지에서 “천지개벽이 일어날 것”이라며 환희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상 개표가 되자 참상이 그대로 드러났다. 90개국 정상과 150여회 정상외교, 5천억원 넘는 공적개발자금 제공, 연중 이어진 대통령의 해외순방에도 확보한 표는 없었다. 잘못된 희망에 도취된데다 반론을 허용하지 않는 독선이 빚어낸 참사다.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건소는 국제 정치에서도 ‘전략적 자아도취’ 현상이 있다고 말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신의 주관대로 상대방을 멋대로 해석하거나 재단하는 행태다. 대통령 주변에 직언하는 참모가 거의 없고, 대통령 스스로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을 곁에 두어 자신의 확신을 손쉽게 관철하려고 한다. 정치적 경쟁자를 악마화하면서 대화는 물론이고 접촉조차 피한다. 뭐든 자신이 직접 판단하고, 결심하고, 행동하면서 다른 의견을 배제한다.

이런 자아도취 현상이 확인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의제가 9·19 남북군사합의서 무력화다. 무력화 조치의 가장 근원적인 출발은 힘으로 북한을 위협하면 굴복하거나 양보할 것이라는 기대다. 이야말로 지독한 자아도취다. 2009년 이명박 정부 당시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이 그랬다. 그가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 북한과 다져놓은 막후대화의 판을 깨고 북한에 모욕감을 강요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나? 2010년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사태다. 그해 초 북한이 서해에서 큰일을 저지를 것이라는 정보가 여럿 보고되었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대형 함정을 위험 수역으로 진입시키고 해상 사격 훈련을 강행했다. 이에 북한은 행동으로 응답했다. 수많은 이들이 죽고 피난한 그 참상이야말로 전략적 자아도취가 국가에 어떤 불행을 초래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교과서다.

그리고 지금 군사합의서 무력화가 북한으로 하여금 군사분계선에서 중화기 전진 배치를 불러오는 것은 명백한 안보위기 신호다. 자아도취자에게는 2010년이나 지금이나 이런 경고가 들리지 않는다. 게다가 윤 대통령은 보궐선거 패배나 부산 엑스포 유치 좌절처럼 안보에서도 막상 겪고 나서야 문제를 깨달을 스타일이다.

이는 적벽대전을 앞두고 조조가 걸었던 길이기도 하다. 조조는 주유의 꾐에 빠져 현지 물길에 밝은 수군 장수들을 간첩이라며 제거하여 수군 지휘가 엉망이 되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치안감급 이상 경찰 고위직들을 대부분 교체하더니, 올해는 멀쩡하게 일하던 대장들을 전원 옷 벗기고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들도 한꺼번에 교체했다. 외교와 정보, 군사에서 혼란이 초래되지 않으면 이상한 상황이다. 국정원과 외교부가 부산 엑스포에서 확보한 표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 증거다.

조조는 제갈량의 꾐에 빠져 화살 10만개를 적에게 선사했다. 한때 우리의 자산이었던 러시아의 우주·군사기술이 북한에 넘어갔으니 미사일과 포 10만개를 북한에 내준 셈 아닌가. 여기에다 중국까지 북한 편으로 돌아서는 중이다. 윤 대통령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이게 바로 자아도취에 빠져 전쟁을 그르친 조조의 모습이다.

한스 모건소는 전략적 자아도취를 배격하고 ‘전략적 감정 이입’을 권고한다. 우월감으로 내 주관을 절대시하지 말고 상대방을 제대로 알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라는 것이다. 군사합의서를 무력화하고 전방에 드론을 많이 띄운다고 안보가 달성되리라는 기대는 오만이고 망상이다. 이스라엘이 드론이 없어 하마스에 기습을 당했나. 팔레스타인의 소외, 상실, 분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시하다 화를 당했다. 9·19 군사합의서 같은 게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에 잘 유지되었다면 전쟁은 없었을 거다.

우리가 평화를 달성하려면 북한을 얼마나 아는지가 중요하다. 북한에 무지한 자에게는 평화도, 승리도 있을 수 없다. 조조를 닮아가는 지금의 권력이 바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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