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김우찬│경제개혁연구소장·고려대 경영대 교수
전세계에서 환경·사회·거버넌스를 고려한 이에스지(ESG) 투자의 운용 규모는 발표기관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지난해 말 기준 30조달러(약 4경원)에 이른다. 이미 거대한 이 규모는 향후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스지 투자의 핵심전략 중 하나는 낮은 이에스지 등급을 가진 회사에 투자를 줄이고, 높은 등급의 회사에 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전자를 ‘네거티브 스크리닝’, 후자를 ‘포지티브 스크리닝’이라고 부른다. 또 다른 전략으로는 재무적 요소뿐만 아니라 환경적·사회적 요소도 고려하는 ‘이에스지 통합전략’이 있으나, 이 역시 결과적으로는 낮은 등급의 회사 투자 비중을 줄이고 높은 등급의 회사 투자 비중을 늘린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한 스크리닝 방식과 큰 차이가 없다.
이러한 투자 전략은 어떤 경로를 통해 사회를 바꾸고 지구를 살릴 수 있을까? 핵심은 자본조달 비용의 변화에 있다. 낮은 이에스지 등급을 가진 회사에 투자를 거부함으로써 이들 회사의 자본조달 비용을 높여 사회적·환경적 문제를 유발하는 활동을 억제하고, 반대로 높은 등급을 가진 회사에는 투자를 늘림으로써 이들 회사의 자본조달 비용을 낮추어 바람직한 활동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최근 학계에서는 이러한 전략에 여러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먼저, 이에스지 투자 규모가 증가하더라도 이에스지 등급에 따른 자본조달 비용에는 차이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버크·판빈스베르헌, 2022). 이에스지 투자자들이 외면한 낮은 등급의 회사 주식을 기꺼이 매입하는 다른 유형의 투자자가 존재하고, 네거티브 스크리닝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더 큰 위험에 직면하지 않는다면 회사의 자본조달 비용은 올라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의 대표적인 지속가능성 주가지수인 ‘푸치포굿 유에스 실렉트 인덱스’(FTSE4Good US Select Index)에서 제외되거나 새로 편입된 회사들의 자본조달 비용을 살펴본 결과, 제외 또는 편입 시점을 전후로 자본조달 비용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다른 연구자들의 실증 연구들에서는 이에스지 투자가 자본조달 비용에 영향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이 가능성을 섣불리 배제할 단계는 아직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더 경각심을 갖고 주목해야 할 연구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이루어지는 지속가능 투자가 자본조달 비용을 탄소집약도에 따라 성공적으로 차등화시키면 지구온난화 문제가 오히려 더 심각해진다는 연구다(하츠마크·슈, 2023). 이들은 우선 자본조달 비용이 상승할 때 에너지·철강·시멘트 등 탄소집약도가 높은 회사들의 탄소 배출량이 오히려 더 증가한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이들이 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새로운 생산 방식에 대한 투자를 포기하고 기존 생산 방식에 더 의존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생산 방식에 대한 투자는 그 속성상 먼 미래 시점이 되어서야 비로소 현금 순 유입이 발생하는 초장기 투자다. 문제는 이러한 초장기 투자는 자본조달 비용이 상승할 때 가장 먼저 경제성이 사라진다는 점이다. 반면, 탄소집약도가 낮은 회사는 자본조달 비용이 하락하더라도 추가로 감축할 수 있는 배출량이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에 배출하는 탄소가 적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지금의 지속가능 투자 방식은 고탄소 산업의 탄소 배출량은 늘리고, 저탄소 산업의 탄소 배출량은 미미하게 줄여 기후위기를 더 앞당긴다는 것이다.
이 연구가 시사하는 바는 명료하다. 진정으로 지구를 살리고 싶다면 탄소집약도가 높은 회사를 재무적으로 곤경에 빠뜨리는 지속가능 투자 방식을 전면 폐기하고, 이들 회사가 탄소 배출량을 줄일 수 있도록 이들의 기후솔루션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경영자들이 이렇게 조달받은 투자금을 다른 곳에 낭비하지 못하도록 주주들이 적극적으로 감시하고 필요하다면 영향력도 행사해야 한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지금의 국민연금 책임투자 방식도 전면 재검토가 필요하다. 국민연금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이에스지 통합이나 네거티브 스크리닝 방식에 머물러 있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주주 감시 기능도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투자 거부보다는 확대가, 방관보다는 적극적인 참여가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