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0월31일 국회 시정연설에 앞서 열린 환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세상읽기] 윤홍식 |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소셜코리아 운영위원장
여야가 내년 총선 전략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정치 평론가들은 “국정 안정이냐 정권 심판이냐?”를 놓고 그럴듯한 주장을 펼친다. 마치 내년 총선 결과에 따라 국가의 운명과 국민의 삶이 바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선거다. 4개월밖에 남지 않은 선거의 쟁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다.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 이상을 확보해야 여소야대를 극복하고 윤석열 정부의 주요 정책을 힘 있게 추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생 안정을 위한 윤석열 정부의 정책들이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의 방해로 실현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것 같다. 한국갤럽이 지난 1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 중 윤석열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32%에 그쳤다. 반면,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60%에 달했다. 이번만이 아니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첫번째 분기를 제외한 지난 5분기(15개월) 내내 윤 대통령의 업무 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여론은 30%대를 넘지 않았다.
국민은 다가오는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과반 의석을 얻는다고 민생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누더기”가 된 노란봉투법조차 가로막았다. 민생을 위한 3대 개혁(노동·연금·교육)을 완수하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했지만, 윤석열 정부는 개혁을 위한 제대로 된 공론조차 모으지 못했다.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한심한” 국민연금 개혁안을 보라. 민생을 살린다며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부자 감세를 하고선, 돈이 없다며 긴축을 실행해 경기를 더 악화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정부다. 엉망진창이었던 잼버리 대회와 초등학교 학급회장 선거보다도 못했던 2030 엑스포 부산 유치 실패 과정을 보면, 정부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의심스럽다.
긴말이 필요 없다. 윤석열 정부는 민주화 이후 가장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다. 왜 국민이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부의 안정을 위해 내년 총선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해야 하는지 대통령과 여당에 묻고 싶다. 대통령 스스로 철저히 반성하고 변화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여당이 승리해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권이 안정된다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 상상하기도 싫다.
슬픈 일은, 그렇다고 달리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윤석열 정권을 심판해 민주당이 승리한다고 치자. 뭐가 달라지겠는가. 문재인 정부에선 여당으로, 윤석열 정부에선 야당으로 민주당이 지금까지 민생을 위해 한 일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하면 갑자기 유능한 민생 정당이라도 되나. 연금개혁과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노란봉투법은 민주당이 여당일 때 통과시켜야 했던 법안들이었다.
민주당이 야당일 때는 정의와 개혁 편에 서는 척하고, 집권당이 되면 평범한 사람들과 약자의 요구에 한쪽 눈을 감았던 행태를 하루 이틀 본 것이 아니다. 말을 바꾸고 국민과 한 약속을 저버린 일도 다반사였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보라. 민주당은 자당의 귀책사유로 보궐선거를 하게 된 경우, 후보를 내지 않겠다는 약속을 저버렸다. 당헌까지 개정해 후보를 냈지만, 참패했다.
그때 반성한 줄 알았다. 그런데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것 같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논란이 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재명 대표는 대선후보 시절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왜곡하는 위성정당을 금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대표가 침묵할 이유가 없다. 약속한 대로 하면 된다. 유불리를 따져, 말을 바꾸고 약속을 저버린다면, 개혁을 바라는 국민 중 누가 민주당을 지지하겠나.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기는 쉽다.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권이기에 비판할 일들이 도처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비판하지 않아도 상식 있는 국민이라면, 이 정권의 무책임과 무능함을 안다.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이기고 2027년 재집권하고 싶다면 국민이 민주당에 투표해야 할 분명한 명분과 믿음을 주어야 한다.
총선 전에 달라졌다는 것을 입증하라.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국민과 한 약속을 지키는 신뢰할 수 있는 민주당의 모습이야말로 그 출발점이다. 다수당으로서 민주당이 펼쳐갈 민생정치를 실감 나게 보여주는 것은 그다음이다.
역사는 국민이 좌우 어디서도 길을 찾지 못할 때, 전체주의와 같은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말한다. 우리가 그 길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