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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대통령 부인의 기이한 통치 [유레카]

등록 2023-12-27 15:53수정 2023-12-28 02:40

대통령이 쓰러졌다.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유고 상태다. 주치의 등 극소수 외엔 모른다. 대통령 부인이 잠시 깊은 고민에 빠진다. 이 상황을 공개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지만 이내 자신이 대통령직을 대신 하기로 마음먹는다.

할리우드 영화의 시나리오가 아니다. ‘대통령제 종주국’ 미국에서 일어났던 실화다. 대통령은 1919년 9월 전국 순회 캠페인 중 심각한 뇌졸중이 발병해 10월 초 반신불수가 됐다. 거동은 물론 의사 표현도 어려워졌다. 부통령이 있었지만, 대통령 부인은 남편이 대통령직을 유지해야만 회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래서 자신이 “(대통령의) 일상적인 업무와 국정의 세부 사항을 맡아 처리했다.”(‘미합중국의 영부인’ 공식 전기, 백악관 누리집)

부부는 원래 범상치 않았다. 대통령은 극비 보고서 등 주요 문서를 아내가 보는 데서 읽고, 백악관 고문들과 토론할 때도 종종 곁에 앉혔다. 미국 최초의 정치학 박사 출신 대통령임에도 공사 분별을 잃었다. 지극한 애정 때문이라고 설명된다. 58살에 첫 부인과 사별한 대통령은 16살 연하인 이 여성을 소개받고 불과 수주 만에 청혼했을 정도로 깊이 매료됐다. 1918년 파리평화회의에도 동행해, ‘유럽을 순방한 첫 미국 대통령 부인’이라는 기록을 아내에게 선사했다.

전무후무한 대통령 부인의 집권기는 내내 아슬아슬했다. 국정 운영이 파행하며 “정부가 폐업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대통령 부인에겐 ‘비밀 대통령’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럼에도 남편은 1921년 3월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퇴임했다. 물론 대통령 부인은 자신이 ‘청지기 정신’으로 마지못해 대행 역할을 맡았을 뿐 절대로 ‘선’을 넘지 않았다고 자서전에 썼다. 12월28일은, 이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1961년 세상을 떠난 날이다. 공교롭게도 1924년 사망한 남편의 105번째 생일이었다.

남편은 ‘민족 자결주의’로 유명한 노벨상 수상자 우드로 윌슨, 부인은 이디스 윌슨이다. 당시엔 사망 외 질병 등으로 인한 대통령 궐위 시 권한대행 규정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제도적 맹점은 1967년 수정헌법 제25조 제정을 통해 해소됐다. 이디스 윌슨의 기이한 통치가 끝나고도 40년 넘게 방치하다 케네디 암살 사건(1963)을 겪고 나서야 손을 본 것이다. 대통령 부인 문제로 나라가 시끄러우니 별의별 역사를 다 찾아보게 된다.

강희철 논설위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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