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와 수리남, 브라질 사이에 끼어 있는 대서양 해변의 작은 나라 가이아나에 에세키보란 곳이 있다. 남한 면적의 1.6배인 15만9500㎢로 가이아나 국토 면적의 3분의 2를 차지하지만, 거주 인구는 가이아나 전체 80만명 중 12만5천명에 불과하다.
그래도 산림자원과 광물자원이 풍부해 주목하는 이들이 많았다. 특히 최근에는 석유가 발견되면서 노다지의 땅으로 변모하고 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최근 이웃한 베네수엘라가 에세키보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나서며 갈등을 빚고 있다. 사실 베네수엘라의 영유권 주장은 처음이 아니다.
에세키보를 둘러싼 영유권 분쟁의 기원은 15~16세기 유럽 열강의 식민지 쟁탈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에는 이 지역을 놓고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경합했는데, 19세기가 되면서 스페인에서 독립한 베네수엘라와 네덜란드로부터 관할권을 넘겨받은 영국이 바통을 이어받는다.
1899년엔 미국의 중재로 국제중재위원회가 구성되어 해결을 시도했다. 당시 중재위원회는 영국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베네수엘라는 불공정한 결정이라며 반발했다.
가이아나가 영국에서 독립한 1966년엔 가이아나와 영국, 베네수엘라가 이른바 ‘제네바 합의’를 맺었다. 가이아나와 베네수엘라의 대표로 구성된 위원회를 만들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60년이 지나도록 아직 해결책은 찾지 못하고 있다.
한동안 잠들어 있던 영유권 분쟁은 2015년 미국의 석유기업 엑손모빌이 에세키보 앞바다에서 석유를 발견한 뒤 다시 꿈틀댔다. 국력 면에서 베네수엘라와 맞서기 어려운 가이아나는 2018년 이 사안을 국제사법재판소(ICJ)로 가져갔다. 그러나 베네수엘라는 국제사법재판소의 개입을 거부하고 있다.
갈등은 지난 9월 가이아나가 국제 석유기업을 상대로 에세키보 앞바다의 석유 탐사권을 경매에 부치는 등 관할권 행사에 나서면서 본격화했다.
베네수엘라는 12월3일 국민투표에서 국민 95.5%가 에세키보의 합병에 찬성했다며 압박하고 나섰다. 논란이 커지자, 두 나라 정상은 14일 전격 만나 “대화로 해결하기로 합의했다”며 한발 물러서는 듯했다.
그러나 영국이 옛 식민지이자 영연방 회원인 가이아나를 지원하기 위해 군함 한 척을 보내자, 베네수엘라도 군사훈련으로 맞불을 놓으며 다시 긴장을 높였다. 과거 제국주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해묵은 탐욕과 욕망, 갈등이 아직도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박병수 국제부 선임기자 su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