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가 1862년 발표한 소설 ‘레미제라블’은 ‘비참한 사람들’을 뜻한다. 빵 하나 훔친 죄로 19년형을 산 장발장을 비롯해 어린 딸을 위해 몸까지 팔아야 했던 팡틴, 혁명을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는 청년들 등 온갖 비참한 사람들의 얘기를 담아냈다.
소설은 같은 제목의 뮤지컬로 만들어져 큰 사랑을 받았다. 1980년 프랑스 초연 이후 1985년 유명 프로듀서 캐머런 매킨토시에 의해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막을 올렸다. 현재까지 웨스트엔드 사상 최장기간 공연 중이며, 전세계 누적 관객 1억3천여만명으로 지난해 기준 역대 가장 흥행한 뮤지컬 6위에 올랐다.
극 중 민중이 봉기할 때 부르는 ‘민중의 노래’는 언제 들어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바리케이드에서 청년들이 총탄에 쓰러지는 장면은 5·18민주화운동을 떠올리게도 한다.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5·18 당시 헤어진 남녀의 시선에서 각각 부른 2부작 노래에 ‘레미제라블’(2009)이란 제목을 붙였다.
휴 잭맨 주연의 뮤지컬 영화 ‘레미제라블’도 인기를 모았다. 영화는 제18대 대통령 선거일인 2012년 12월19일 국내 개봉했는데, 600만 가까운 관객을 모으며 ‘깜짝’ 흥행에 성공했다. 당시 박근혜 후보의 대선 승리에 상실감을 느낀 이들이 대거 영화관을 찾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몇년 뒤 대통령 퇴진 촉구 집회에서 ‘민중의 노래’가 울려 퍼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영화 속 6월 혁명은 실패로 끝났지만, 한국의 촛불혁명은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지금 뮤지컬 ‘레미제라블’ 10주년 기념 공연이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리고 있다. 지난달 인터파크티켓 뮤지컬 월간 예매 1위에 올랐을 정도로 흥행 가도를 달리는 중이다. 재미와 작품성을 다 갖춘데다, 힘없고 소외된 이들과 연대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마음이 공감을 부르지 않았을까 싶다. 법을 도구 삼아 약자들을 핍박하는 자베르 경감에게서 지금의 ‘검찰 공화국’을 읽어내는 사람도 있을 법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3·8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통령 입장곡으로 ‘민중의 노래’를 직접 골랐다고 한다. 무슨 뜻에서 그랬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보다 ‘레미제라블’이 진정 말하고자 한 바는 뭔지, 사람들이 왜 열광하는지를 곱씹어보는 게 먼저이지 싶다.
서정민 문화부 기자 westm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