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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이종건의 함께 먹고 삽시다] 흔치 않은 승리의 기억 ‘놀란곱창’

등록 2024-01-03 19:11

함께 먹고 삽시다
‘놀란곱창’. 필자 제공

 

이종건 | 옥바라지선교센터 활동가

푸짐하게 썰어낸 양배추 사이로 알알이 보이는 작은 곱창들, 누린내 걱정하는 사람들도 빨갛게 양념해 볶아 낸 야채곱창이라면 생각이 달라질지 모른다. 주방에서 초벌로 볶아낸 것을 손님 테이블에서 한차례 더 볶는다. 철판에 눌러 붙이듯 오래 볶아도 좋고, 곱창의 식감이 살아있을 때 서둘러 먹기 시작해도 좋다. 당면에 깻잎, 잘게 썰어 넣은 순대까지. 식감도 재밌고, 양도 푸짐하다. 물가가 제법 올랐다지만 야채곱창은 여전히 주머니 가벼운 이들의 넉넉한 안주다.

718일. 서울 마포구 북아현 1-3지구에 있었던 ‘북아현 곱창’집이 강제철거에 반대해 노숙 농성한 시간이다. 2011년 협상이 타결됐으니, 제법 오래된 이야기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시절 용역들은 무서울 것 없이 막무가내였다. 가게 안에 사람이 있는데도 굴착기를 동원해 가게를 부수곤 엄살떨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쫓겨나 천막을 치고 농성에 나서자 수시로 찾아와 희롱에 모욕을 일삼았다. 그렇게 2년을 버티며 생존권을 위해 싸웠고, 마침내 승리한 것이다. 제대로 된 보상은커녕 모욕만 당하다 쫓겨나야 하는 재개발지역 상가세입자의 보기 드문 통쾌한 승리였다.

2013년 ‘북아현 곱창’은 서교동에 다시 둥지를 틀었다. 그때를 기억하고 있는 몇몇이 연말모임을 하러 서교동 ‘놀란곱창’에 모였다. 야채곱창 3인분에 닭발을 먹었다. 그 당시를 회상하는 얘기들을 나눠보지만 이제는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곱창 맛은 여전하고, 기억은 흐려진다. 연말은 연말인가보다.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카드를 내밀며 서로 계산하겠다고 아등바등, 그 와중에 사장님은 오래간만의 만남이라며 한사코 돈을 받지 않으려 하고. 2년 동안 천막을 지키고 매일 같이 1인시위를 하며 가게를 지켜 낸 사장님 부부의 뚝심일까. 이리저리 얘기해 봐도 도무지 받지를 않으시니, 신년회 때는 더 많이 데려와 더 많이 긁고 나갈게요, 너스레 떨곤 나오는 수밖에.

새해가 밝으면,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게 된다. 꼬박 10년 전, 농성장을 접고 아현동에서 서교동으로 옮겨 새로운 일상을 시작한 가게에서는 투쟁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다. 새롭게 건 간판도 그새 바래 낡았다. 계산대에는 ‘놀란곱창’이라고 적힌,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을 조립해 만든 펄러비즈가 있다. 10년 전 유행했던 공예인데, 당시 강제철거를 반대하기 위해 모인 단골이 만들어 가게에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파란색 쨍한 비즈로 적힌 네 글자만 빛바래지 않고 여전하다. 사장님은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의 방문이 고맙고 반갑다. 찾아간 이들은 그 시절을 잊지 않은 가게에 감사하다.

구청장의 사과와 재개발 조합과의 협상으로 ‘북아현 곱창’집 투쟁이 마무리되던 날, 사장님은 마지막 1인시위를 하기 위해 서울시청을 찾았다. ‘강제철거 711째’ 라고 적혀있던 피켓의 마지막 문장은 “다시는 강제철거가 없는 서울시로 이끌어 주십시오”였다. 이후로도 많은 강제집행이 있었고, 지금도 강제집행을 앞두고 싸우고 있는 이들이 있다. 그럼에도 강제집행을 당하며 곱창집을 지켜온 2년의 농성과 또 다른 수많은 가게가 한해 한해 싸우며 바꿔온 것들이 있다. 아프게 싸우고, 끈질기게 버틴 이들의 지난 역사 위에 세상은 느리지만 바뀌어왔다. 새해가 밝았고, 싸우는 이들은 그렇게 견디며 또 세상을 바꿀 것이다. 누구 하나 제대로 기억하는 이 없어도, 그렇게 세상은 바뀌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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