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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개 식용 금지 이끌어낸 초당적 ‘개연정’ [유레카]

등록 2024-01-10 17:06

개 식용은 한국 사회의 해묵은 논쟁이다. ‘먹을 권리’ ‘문화적 다양성’을 앞세운 찬성론과 ‘개는 가축이 아닌 반려동물’이라는 반대론이 맞붙으면서 수십년 동안 불법도 합법도 아닌 상태로 방치됐다.

정부는 1973년 축산법 중 ‘가축의 범위’에 개를 포함했다. 1975년엔 축산물가공처리법(현 축산물위생관리법)을 개정해 개의 도살·가공·유통 등을 관리 대상에 넣었다가 국내외 반발에 밀려 1978년 개고기를 축산물에서 제외하도록 법을 바꿨다. 개를 가축으로 분류해 대량 사육이 가능하도록 했지만, 도살·유통 등은 허용하지 않는 모순적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또한 동물보호법은 개·고양이 등을 ‘반려동물’로 규정하고 있다.

개 식용 문제는 특히 국제 대회를 앞두고 세계적 관심사가 되곤 했다. 1986년 아시안게임 및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국외 동물단체들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전두환 정권은 보신탕집 ‘숨기기’에 나섰다. 서울시는 1984년 개고기를 혐오식품으로 지정했고 식당 영업을 금지했다. 보신탕 식당은 서울 외곽으로 밀려나거나 이름을 사철탕·영양탕·보양탕 등으로 ‘변주’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릴 즈음엔 프랑스의 여배우인 브리지트 바르도가 개 식용이 ‘야만적 관행’이라며 논쟁에 불을 댕겼다. 2018년 평창겨울올림픽 때는 동물단체의 반발을 우려한 강원도가 보신탕 식당에 지원금을 주며 간판을 대회 기간 동안 바꾸도록 요청했다.

개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집이 700만가구에 이르고 동불복지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개 식용 금지 법안은 정치권에서도 주요 관심사가 됐다. 관련 업계의 반발로 좀처럼 진척되지 않던 개 식용 금지 법안은 ‘애견인’ 전·현직 대통령의 등장으로 동력을 얻었다. 2021년 문재인 대통령은 “개 식용 금지를 신중하게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물꼬를 텄고,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엔 김건희 여사가 개 식용 금지를 강력히 주장하자 여당이 ‘김건희법’이라며 팔을 걷어붙였다. 지난해엔 여야 의원 44명이 참여한 ‘개 식용 종식을 위한 초당적 의원모임’도 결성됐다. 마침내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도살하거나 사육·증식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동물보호단체의 헌신적 노력과 대통령실과 여야가 이례적으로 힘을 합친 ‘개연정’(개+연정)의 성과다.

최혜정 논설위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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