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도시, 아드리아해의 여왕. 카사노바와 마르코 폴로의 고향이면서 세계적 비엔날레와 영화제가 열리는 이탈리아 베네치아는 흔히 ‘세상의 다른 곳’(Alter mundi)이라고 불린다. 괴테는 “달리 비교할 데가 없는 곳”(‘이탈리아 기행’)이라고 썼다.
그 특유의 매력이 전세계 사람들을 불러모은다. 연간 500만명 이상이 찾아 ‘오버 투어리즘’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팬데믹 때 주춤했지만, 2022년 460만명선을 회복했다.(통계 플랫폼 ‘스태티스타’) 그 여파로 올해부터 주말 당일치기 여행객은 입장료를 내야 하고(4월), 단체관광도 팀당 최대 25명으로 제한된다(6월).
많은 여행자는 비현실적 풍광에 압도된 나머지 도시 곳곳에 서린 천년 공화국의 역사를 놓치곤 한다. 대표적 명소인 ‘도제궁’(두칼레궁전) 3층 대회의실에는 117명에 이르는 역대 도제(통령)의 초상이 벽면 상단을 따라 쭉 걸려 있다. 그런데 딱 한 사람만 얼굴이 없다. “이 자리엔 범죄로 처단된 마리노 팔리에로가 있었다.” 검은색 휘장에 적힌 짧지만 단호한 문장이 사연을 대변한다. 해군 지휘관 출신인 그는 1355년 군주제 쿠데타를 모의하다 ‘10인 위원회’에 발각돼 참수당했다. 이 사건은 697년 건국 이래 1797년 나폴레옹에게 패망할 때까지 무려 1100년간 독립 공화국일 수 있었던 비결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권력은 철저히 분산됐다. 종신직 행정수반인 통령은 시민이 선출했다. 대개 존경받는 원로가 뽑혔다. 하지만 권력 독점과 세습, 차별적 특권, 개인숭배는 허용되지 않았다. 10인 위원회가 늘 감시하고 견제했다. 대화는 물론 아내에게 쓴 편지도 검열받았다. “(통령은) 자유만 제외하고 모든 걸 누렸다.”(‘프란체스코의 베네치아’) 마키아벨리의 친구인 역사가 귀차르디니는 “유사 이래 최고의 통치 체제”라고 평했다. 이를 기반으로, 13세기 이후 동지중해의 해상무역을 독점하며 수백년간 번영을 누렸다. 비엔날레가 열리는 ‘아르세날레’(병기창)에는 한때 3300여척의 배와 3만6천명의 해군을 거느렸던 강대한 도시국가의 자취가 남아 있다.
동력선 이전 유일 교통수단인 곤돌라도 원래는 온통 울긋불긋 요란했다. 하지만 경쟁적 과시욕이 사회적 갈등으로 번지자 채색을 법으로 금했다. 오늘날까지 검은색, 하나로만 칠해지는 이유다. 천년 공화정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강희철 논설위원 hcka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