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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황제의 댓글 / 김종철

등록 2006-04-18 18:15수정 2006-04-18 18:16

유레카
청나라 번성기를 이끌었던 황제 중 한명인 옹정제는 관료집단을 장악하는 독특한 통치술을 구사했다. 지방관들과 황제 간의 직거래 통신인 밀접(密摺)제도가 그것이다. 옹정은 현지 책임자인 전국의 지방관들에게 주접(奏摺)이라고 불리는 비밀 상주문을 직접 올리게 했으며, 이를 직접 뜯어봤다. 상주문은 현지의 정치·군사적 상황에 대한 정보 보고나 정책 건의 등이 담겨 있었다. 그는 이를 읽은 뒤 자신의 의견이나 추가 지시사항, 비평 등을 일일이 직접 적어 발송인에게 다시 보냈다.

이 답글은 황제만이 쓰는 붉은 먹물을 사용했기 때문에 주비(朱批)라고 불렀다. 지방관은 황제가 주비를 쓸 수 있도록 상주문을 작성할 때 주접의 행간을 넉넉하게 해야 했으며, 끝에도 여백을 많이 남겼다. 황제의 비밀 댓글은 나중에 〈옹정주비유지〉(雍正朱批諭旨)란 책으로 발간됐다.

환관 등 관료에 의존하지 않고 모든 상주문을 읽고 주비를 쓰느라 옹정은 항상 밤늦게까지 일했다고 한다. 이러한 근면성뿐 아니라 지방관들이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만큼 행정이나 국정운영 철학에 대한 자신감이 없고서는 댓글 달기를 시도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방관들과의 이런 비밀 통신은 국정이나 인재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가능하게 했으며, 치적의 바탕이 됐다. 또 옹정의 주비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제도 개선으로 가능했다. 청나라의 공식언어는 만주어였기 때문에 옹정 이전에는 한문으로 된 모든 문서는 만주어로 번역해야만 했다. 합리주의자인 옹정은 이를 없애 행정적인 낭비를 줄이면서 관리들과 직접 통신한 것이다.

공무원들이 국정브리핑 등에 올리는 글에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답을 쓰는 인터넷 댓글이 논란과 함께 화제다. 공개에 따른 부작용이 나타나자 얼마 전부터는 당사자 등 몇 명만 볼 수 있도록 시스템을 고쳤다고 한다. 옹정의 주비처럼 처음부터 비공개로 운영됐더라면 어땠을까?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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