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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 ‘부동산 거품’ 발언들, 적절치 않다 / 이일영

등록 2006-05-21 21:39수정 2006-06-09 16:33

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나라살림가족살림
정부가 다시 부동산 값을 표적으로 들고 나왔다. 서울의 강남 3개구와 양천구, 분당, 평촌, 용인 등 7곳을 ‘버블 세븐’으로 규정했다. 거품 붕괴에 대한 경고와 함께, 이들 지역에 대한 추가 압박도 시사하고 있다. 관계 당국자들은 한 마디라도 걸쳐두려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 시도 때도 없이 봉화를 올려 법석대는 듯하여 씁쓸하다.

정부 말대로 일부 지역에 국한된 문제라면, 조용히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면 된다. 거품이 꺼지기 직전이라면, 닥쳐올 금리 인상, 가계 불안, 거시경제의 동요에 대비하는 것이 순서다. 그러나 정부는 거품 붕괴의 충격은 크지 않다고 한다. 더 강력한 조처를 이야기하면서, 또 판교·송파 새도시, 강북 개발을 추진한다. 시장 참여자들은 정부의 진짜 목표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정부가 지목한 지역들과, 또 정부가 개발을 독려한 충청권 등에서 부동산 값이 많이 오른 것은 분명하다. 토지나 주택 보유에 대해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부담을 더 지도록 하는 것도 적절한 방향의 조처다. 그러나 정부가 일부 지역에 대해 토끼몰이 하듯 위협적 신호를 남발하는 것은 냉정하고 정교한 전문가의 솜씨와는 거리가 있다.

고급주택 시장은 큰 폭의 가격 상승과 하락을 보이는 것이 보통이다. 미국에서 가장 높은 가격을 나타내는 동부의 보스턴, 서부의 샌타바버라는 호황기에 가격이 급상승했다가 불황 때는 큰 폭으로 하락하곤 한다. 규모가 큰 주택도 대개 이런 패턴을 따른다. 복잡다단한 경로를 통해 결정되는 역사적 시장가격을 몇 개 정책수단으로 완전히 통제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이다. 건물의 소유권만 화폐화하고 있을 뿐 토지소유권은 국가가 가지고 있는 중국에서도 상하이와 항저우의 부동산 붐을 막지 못했다.

정부는 투기수요가 강남 등지에서 거품을 조장한다고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다. 투기수요 말고도 인구·문화적 수요와 자산방어적 수요가 분명 중요한 몫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과 ‘우리’를 얼마나 확연히 가를 수 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20대 말~30대 초에 최초의 주택을 구입하고, 30대 말~40대 초에 주택 전환을 시도했다. 미국에서처럼 한국에서도 베이비붐 세대가 거대한 수요층이다. 1955~83년의 29년 동안 한국에서는 매년 80만명 이상이 태어났다. 이들이 최초의 주택을 구입한 시기와 80년대 말, 집을 넓혀가는 시기와 2000년대 초가 서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주택 구매력이 왕성한 40~50대 비율은 2015년에 32%가 되어 정점에 이른 뒤 하락한다. 베이비붐 세대의 인구 파도가 지나가는 어느 시점에서 부동산 거품은 빠지게 되어 있다.

한국에서도 베이비붐 세대는 새로운 중산층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들은 자유분방하고 평등을 강조하는 문화를 지니고 있으며, 국제화된 대기업이나 혁신적 기술기업, 지식을 필요로 하는 서비스업에 종사하곤 한다. 이기적이고 교육·경제적 성공을 중시하며, 압축적 도시화의 후예답게 농촌의 감수성에서 벗어나 있다. 그들이 선호하는 곳이 ‘버블 세븐’이기도 하다. 그곳은 경제적 욕망이 폭주하고, 평등하기도 하며, 질투심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기도 하는 곳이다.

경제가 수의 무게를 이기는 법은 없었다. 길게 보면 정치도 그럴 것이다. 연이어 시장을 위협하는 정부의 행동에 대해, 선거 후에라도 그 효과를 평가해 보기 바란다. 곰곰이 따져보면, 왜 많은 국민이 외면하는지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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