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레카
미국에서는 변호사(lawyer)라고 하면, “거짓말쟁이(liar)라고요?”라고 되묻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지만, 역시 거짓말 챔피언은 정치인이다. “이 말이 거짓말이면 자리를 내놓겠다”는 정치인의 말은 직업적 거짓말 가운데서도 압권으로 꼽힌다. 그러나 정치인의 거짓말에 이골이 난 유권자라도 그걸 다 관용하지는 않는다.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부시 후보는 “내 입술을 보시오”라는 유명한 말을 했다. “절대 새로운 세금은 없다”는 약속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부시는 대통령이 되자 맥주세를 갑절로, 휘발유세를 56% 올렸다. 부자들에게는 세금을 깎아줬다. 4년 뒤 선거에서 빌 클린턴은 부시가 그 말을 하던 장면을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쉼없이 내보냈다. 부시는 백악관을 내줘야 했다.
한번 내뱉은 말은 언제든 자신을 옥죄는 덫이 될 수 있다. 마케팅 기법의 연구자들은 손님이 한 말을 되돌려쳐 물건을 파는 화법을 ‘부메랑 화법’이라고 부른다. 값싸고 투박한 제품을 먼저 내놓고 품질이 떨어진다는 불평이 나올 때, 고급제품을 내놓아 비싼데도 사게 하는 방식이다. 부메랑 화법의 원리는 상대에게 사고와 행동에서 ‘일관성’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를 직접 공격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최근 한국경제연구원의 조경엽 연구위원은 한 토론회에서 “참여정부가 고소득층에게 유리하게 법인세와 소득세는 내리고, 정반대로 중산층과 서민에게 부담이 되는 에너지 관련세와 주세를 올려 분배 형평성을 오히려 악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중산층과 서민의 정부’를 표방하고 양극화 해소를 핵심 정책목표로 제시한 참여정부가 오히려 양극화를 확대시켰다는 것이다. 변명할 길 없는 사실인데, 재계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 부설 연구기관 종사자에게 그런 지적을 받은 것이 더욱 뼈아플 것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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