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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학술적으로 쓰면 기사 안 된다? / 서홍관

등록 2006-06-12 19:29수정 2006-06-13 14:28

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야!한국사회
얼마 전 국립암센터에서 〈암과 음식〉이라는 책을 펴냈다. 각 암종별로 암을 일으키는 음식을 소개하고 있기도 하지만, 암을 예방하는 음식도 소개하고 있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 만한 내용이었다. 먹는 것이 건강에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음식이 암을 일으키는 비중은 얼마나 될까?

세계보건기구 산하기구인 국제암연구소에서는 30%라고 발표하였고,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돌과 피토 박사는 35%로 추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빈센트 드비타 전 미국 국립 암연구소장이 편집한 암에 관한 권위 있는 교과서에서는 단지 5%라고 쓰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은 암에 걸리게 되면 그때부터라도 몸에 해로운 것을 먹지 않기 위해 엄청나게 조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암을 예방하거나 치료하기 위해서 ‘이것을 먹어라, 저것을 먹지 말라’ 말들은 많지만, 대개 근거 없는 내용이거나 건강식품 업자들의 광고에 현혹된 것들이라서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정보는 그 자체로 소중할 수밖에 없다.

책이 나온 며칠 뒤 위암 때문에 국립암센터로 치료받으러 다니는 초등학교 동창이 찾아왔다. 그는 인터넷에서 암에 관한 좋은 소식이 없는지 자주 검색한다고 했다. 마침 암과 음식에 대한 내용이 있어 읽었는데 녹차가 암을 예방하는 게 아니라 일으킨다고 되어 있어서 그동안 녹차가 좋다고 일부러 마시고 있던 동창은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나는 녹차가 암을 치료하는 것도 아니겠지만, 암을 일으킨다는 말이 책에 있을 리가 없을 텐데 하면서 사정을 확인해 보았다.

한 신문사가 그 책 발간에 대한 내용을 기사로 썼는데 제목을 ‘녹차, 채소 암예방에 효과 없다?’라고 붙였으며, “채소·과일에 많이 들어 있는 베타카로틴과 녹차를 즐겨 섭취하면 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말이) 상식처럼 들리지만 이는 정답이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다”고 서술하고 있었다. 더구나 한술 더 떠 “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베타카로틴은 흡연자가 필요 이상 과다섭취할 경우 폐암 발생률이 더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씌어 있어 마치 이 기사만 읽어보면 채소와 과일을 먹으면 암 예방에 효과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폐암을 일으키는 것처럼 되어 있다.

그럼 진실은 무엇인가? 책에 보면 녹차에 대해서는 “매일 3~4컵 이상의 녹차를 마신 여성은 유방암과 위암 발생이 적었으며, 동물실험에서 유방암의 성장을 억제시키거나 유방암의 발생을 감소시킨다는 보고가 있으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씌어 있었다. 베타카로틴에 대해서는 “(베타카로틴이 풍부한) 과일 및 채소를 많이 섭취하는 군은 폐암 발생이 적었다. 그러나 베타카로틴을 정제로 따로 섭취하는 것은 효과가 없었고, 흡연자에서는 오히려 폐암 발생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대규모 장기간 연구에서 베타카로틴 정제 섭취와 폐암 발생은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고 씌어 있었다.

결국 과일 및 채소 섭취는 유익한 것이고, 베타카로틴을 정제로 섭취하는 것은 효과가 없으며, 녹차는 암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었다. 저자가 오해가 많은 기사를 쓴 기자에게 항의하는 메일을 보냈더니 답이 왔는데 가관이었다. “그렇게 학술적으로 쓰면 그게 학술논문이지 기삽니까?”

내 친구는 다시 안심하고 녹차를 마시고 있다지만 혹시라도 어떤 환자분들이 불안에 떨면서 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채소나 과일을 줄이고 있지 않을까 걱정된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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