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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시장의 신화 / 박종현

등록 2006-06-25 21:45

박종현 진주산업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박종현 진주산업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나라살림가족살림
개인주의와 시장주의 이데올로기가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은 외환위기가 결정적인 계기였을 것이다. 철옹성 같던 재벌이 무너지고 ‘평생직장’에서 속절없이 밀려나면서 사람들은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가정을 책임질 곳은 이제 나 자신밖에 없다. 어느 새 우리는 시장에서 살아남고 몸값을 높이는 데 가장 큰 가치를 두게 되었다.

이 와중에 시장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더욱 두터워지고 있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을 민영화하자거나 자립형 사립학교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기득권층의 이기주의라고 폄하하기에는, 여기에 심정적 지지를 보내는 사람이 너무 많다. 오히려 공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하면 국제경쟁의 시대에 인재육성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조야한 평등주의자로, 적대적 인수·합병(M&A)이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을 지적하면 주주자본주의 시대에 역행하는 철지난 민족주의자로 치부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통해 경쟁의 햇볕을 비춤으로써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서비스산업을 탈바꿈하겠다는 정권의 믿음 역시 시장근본주의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올해 초 뜨거운 쟁점이었던 양극화 문제가 흐지부지된 것 또한 시장의 힘을 보여준다. 우리 사회의 다수는 시장이 잘 움직여 경제가 성장하기만 하면 양극화 문제도 저절로 해결되리라는 논리에 동의한 것이다.

시장만능론자들의 확신을 뒷받침하는 것은 미국의 성공이다. 이곳에서는 정부가 시장원리를 앞장서서 후원했기 때문에 역동적이고 효율적인 경제가 가능했다는 것이다. 가난하게 태어났어도 열심히 노력해 능력을 입증하면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의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믿음과 많이 다르다. 미국이 가장 역동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빈부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확대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사회적 이동성이 높지 않다. <이코노미스트>에 소개된 한 연구를 보면, 유럽에서 가난한 집의 자식으로 태어난 사람이 부모보다 경제적으로 나아질 확률은 75%였음에 비해 미국에서의 가능성은 50%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경제의 역동성과 경쟁력을 획득하는 데 미국식의 시장주도적인 길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80년대 이전에는 독일과 일본이 미국보다 우월한 경제적 성과를 발휘했다. 이들 나라는 그후 경쟁력이 약화되기는 했지만 다수의 국민들에게 미국에 비해 우월한 삶의 질을 제공하고 있다. 더욱이 핀란드·스웨덴·덴마크 등 북유럽 나라들은 미국 못지않은 역동성과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고도 안정성장과 낮은 소득불평등 그리고 높은 수준의 복지를 달성하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의 다양성’과 ‘경제적 문제들에 대한 여러 조정방식들’에 주목하는 학자들은 세계화 시대에 미국식 시장주의가 유일한 경제적 표준이라는 주장에 반하는 다양한 현실에 주목한다. 노사관계, 기업지배구조, 교육 및 직업훈련,기업간 관계, 사회복지 등 경제의 여러 영역에서의 주요 결정을 자유시장에 맡기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좀더 많은 나라들에서는 여전히 상호협의와 타협 속에서 시장 이외의 제도와 규칙으로 경제활동을 조정하고 있으며, 이러한 방식을 통해 우월한 경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교육·보건·주거·육아·문화 등 여러 사람들의 생존이나 안녕과 직결된 공공성이 높은 영역에서는 정부의 몫이 여전히 크다. 시장이냐 다른 형태의 조정이냐를 가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경제논리가 아니라 사회구성원들의 가치관 그리고 정치적 세력관계라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박종현/진주산업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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