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
유레카
법의 상징으로 오늘날 가장 많이 쓰이는 것이 그리스 신화 속의 ‘정의의 여신’ 디케(Dike)다. 디케 조각상은 대개 한 손에 저울, 다른 손에는 칼이나 법전을 쥐고 있다. 저울은 형평성을, 칼은 엄정함을 나타낸다. 디케는 또 눈을 감거나 안대로 가리고 있는데, 이는 판결에서 주관성을 배제하겠다는 뜻이다.
서울 세종로의 옛 대한변호사협회 자리에는 지금도 한 손에 저울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칼을 내려짚은 채, 눈을 지그시 감고 명상하는 듯한 모습의 디케상이 서 있다. 옛 사법연수원에도 눈을 지그시 감은 디케상이 있었다. 지금 우리 대법원의 로고 또한 디케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러나 상징은 상징일 뿐, 실제 법집행 과정은 그다지 국민의 신뢰를 얻지 못했다. 법조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디케가 실눈을 뜨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흘러나왔다.
1998년 의정부지원 판사 뇌물 사건으로 온나라가 들썩거릴 때, 사법연수원생들이 이색적인 제안을 했다. “디케상에 안대를 씌우는 행사를 열자.” 법조인의 양심을 다잡는 계기로 삼자는 것이었다. 법조계 선배들을 당혹스럽게 했던 이 제안은 물론 묵살됐다. 그리고 우리의 디케들은 여전히 실눈을 뜨고 있는지, 법조비리는 그 뒤에도 끊이지 않는다. 이번에는 부장판사 이름까지 오르내린다.
네덜란드의 화가, 헤라르트 다비트가 1498년 그린 〈캄비세스왕의 재판〉은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기원전 529~522)가 부패한 재판관을 처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재판관 시삼네스가 돈을 받고 어긋나는 판결을 하자, 왕은 그의 살가죽을 벗겨 재판관 의자에 깔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이 의자에 앉을 새 재판관으로 시삼네스의 아들인 오타네스를 임명했다. 그런 가혹한 처벌을 통한 경계말고는 방법이 없는 것일까?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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