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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물가와 양극화 / 류동민

등록 2006-08-02 19:16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나라살림가족살림
몇 해 전에도 잠시 산 적이 있는 일본에서 다시 여름을 지내고 있다. 어느덧 한 달 넘게 지났건만 아직도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살 때면, 이미 내 머리는 재빠르게 가격표에 표시된 가격에다 환율을 곱해서 한국 돈으로 얼마인지 계산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몇 해 전에는 나를 그토록 기죽게 만들던 인스턴트 라면이나 아이스크림, 반찬류 따위의 제품들이 지금은 이 정도면 살만하군 하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최근 원화 가치가 엔화의 그것에 비해 많이 올라간 탓도 있겠지만, 그동안 한국의 물가 또한 만만찮게 상승하였다는 증거이리라.

그런데, 지난주 우연히 내가 사는 곳에서 두 구역 정도 떨어진 곳까지 산책을 갔다가 발견한 새로운 대형 슈퍼마켓의 제품가격은 비록 몇 해 전의 좌절감을 맛보게 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겁없이 지갑을 열고 돈을 뿌려대던(?)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꽤나 높은 것이었다.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입구는 불법주차 자전거로 발 디딜 틈이 없고, 두 개에 100엔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의 삼각 김밥 앞에는 노숙자 풍모의 할아버지나 동남아시아계 이민들이 줄지어 서 있는, 도착한 첫날부터 도시락 사 먹고 배탈 나는 수가 있으니 조심하라는 한국 유학생들의 신신당부를 들어야 했던 단골슈퍼와는 달리, 대형 주차장이 딸린 쾌적한 매장에 우아한 옷차림의 일본인 미시족들로 가득 찬 그곳은 내부 장식조차 어릴 적 동네이발관을 연상시키는 키치적인 예의 그 슈퍼와는 수준(!)이 다른 것이었다.

얼마 전 일본보다 한국의 물가가 더 비싸다는 〈조선일보〉 기사를 흥미 있게 읽은 적이 있는데, 바로 며칠 뒤 그 기사를 반박하는 독자투고를 인터넷 신문에서 읽었다. 예를 들면 도쿄의 저가형 쇠고기덮밥 체인의 가격과 서울 강남의 유명 설렁탕집 가격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부당하며, 그 배후에는, 아마도 ‘좌파’ 정권 아래에서 팍팍해진 서민생활을 강조하려는 조선일보다운 정치적 해석이 숨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러한 문제는 물가지수를 측정할 때 항상 제기되는 오래된 논란거리며, 어느 정도는 불가피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똑같은 커피 가격이라 하더라도, 금붕어 노니는 어항이 있는 다방에서 ‘레지’가 가져다주는 커피 가격을 기준으로 하느냐, 테헤란로 한복판의 스타벅스 ‘오늘의 커피’ 가격을 측정하느냐에 따라 물가수준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문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가져다주는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도 소비의 양극화 경향이 변형된 모습으로 관철된다는 사실이다. 쌀이 없어 도시락을 못 싸는 절대빈곤이 줄어드는 한편에서, 유기농 국산 쌀과 싸구려 수입산 쌀 사이의 질적 양극화가 진행되는 것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사회적 협약이라는 문제가 화두로 제기되고 있지만 바로 직전의 화두는 양극화였다. 과연 정부여당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나 능력이 있느냐는 문제와는 별도로, 그것이 우리 사회에 던진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볼 때다.

임대아파트 주민과 고급아파트 주민이 섞여 살면 오히려 불행해지는 것은 전자라는 식의 현실적(?) 논리에서부터, 양극화 자체를 경쟁의 적절한 자극제로까지 간주하면서 인위적인 양극화 해소 시도에 반대하는 주장이 당당하게 나오는 한편에서, 단순히 경제지표로는 파악하기조차 어려운 양극화 문제는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화두 시리즈의 시초 격이었던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의 두 배 정도를 이미 달성한 나라의 대도시 한구석, 서민동네 슈퍼에서 도시락을 사려고 줄서다가 느낀 단상이다.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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