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
유레카
16세기 이탈리아 수학자 카르다노에게 수학 탐구의 정열을 불태우게 한 것은 도박 중독이었다. 파스칼과 페르마는 ‘주사위 게임이 중단됐을 때 걸고 있던 판돈을 어떻게 나눠야 하느냐’는 도박꾼의 질문에 해답을 찾다가 확률이론을 발전시켰다. 수학의 발달에 도박도 제법 이바지를 한 셈이다. 그 수학의 확률로 보면, 도박에서 최후의 유일한 승자는 도박장을 열어 수수료를 챙기는 사람이다. 그러나 도박에 빠진 사람들은 이 평범한 진리를 쉽게 잊는다. 〈도박자〉라는 소설을 남긴 러시아의 도스토옙스키도 룰렛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했다. 그는 룰렛 게임에서 자신이 돈을 따는 비법을 터득했으나 그것을 깜박 잊고 적용하지 않아 돈을 잃었다고 믿었다.
도박 열풍이 부는 시대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유승훈은 〈다산과 연암, 노름에 빠지다〉라는 책에서, 우리나라 민중들 사이에 도박이 널리 퍼진 대표적인 시기로 조선 후기와 일제 강점기를 꼽는다. 민중이 생업을 통해 앞날을 기약하기 어려웠던 시절이다. 경제도 어렵고 정치적으로도 암울했던 1980년대에도 고스톱 열풍이 온 나라를 휩쓸었다. 지금은 아예 나라가 나서서 도박을 권한다. 카지노와 경마·경륜 등 합법적인 도박 시장은 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국민에게 건전한 오락 기회를 제공하는 면도 있으나, 중독자는 늘어만 간다. 좋은 일에 쓸 세금과 기금을 가난한 이들의 주머니를 털어 마련한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 얘기다.
불법 도박장인 성인게임방이 주택가까지 파고들기 시작한 지도 꽤 오래됐다. 그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게 일자 정부와 여당이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불법 도박장 문을 닫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도박 중독 예방과 치료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 카르다노나 도스토옙스키 같은 인물이 나오기를 기대하기엔 도박 중독의 폐해는 너무 크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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