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인위적’ 경기부양책이라는 담론 / 박종현

등록 2006-08-06 20:56

박종현 진주산업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박종현 진주산업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나라살림가족살림
외환위기 이후 금융이나 부동산 부문의 체질은 약화되었다. 저금리 기조와 과잉유동성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해외자본의 유입이 늘었다거나 정부가 중앙은행에 압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중앙은행의 독립성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앨런 그린스펀이 통화정책의 전권을 휘두른 미국은 우리보다도 과잉유동성 문제가 더 컸다. 누구나 인정하듯이, 그린스펀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카리스마를 과시한 중앙은행 수장이었다.

‘인위적’ 과잉유동성 문제는 ‘인위적’ 경기부양책에 대한 거부와 관련이 있다. 과잉유동성 문제는 중앙은행의 독립성보다는 거시정책의 패러다임 변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재정정책은 자본주의 경제의 안정적 성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이후 재정정책 회의론과 함께 ‘작은 정부론’ 그리고 ‘균형재정론’의 새로운 시대정신이 된다. 이제 경기안정의 부담을 통화정책이 떠안게 되고, 중앙은행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경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전세계적으로 과잉유동성, 자산가격 거품, 금융불안 등이 빈번하고 격렬하게 출현하고 있는 것이나,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가 신용카드 남발이나 과잉유동성 공급의 후유증을 앓았던 것도 이런 변화의 직간접적인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대공황 당시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정부개입에 끝까지 반대를 해 가장 가까운 동료, 라이오넬 로빈스로부터 “얼음처럼 차가운 연못에 빠진 술취한 사람에게 애초의 증상이 고열이었다는 이유로 담요와 술을 주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 것은 그의 일생에서 가장 큰 실수였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경제의 자연치유력을 믿기 때문에 인위적 부양은 않겠다며 경기가 나쁜데도 개입하지 않는 것은 정치논리상 가능하지도, 경제논리상 바람직하지도 않다. 균형재정 목표를 경직적으로 설정해 스스로의 손발을 묶는다면 통화정책이나 금융정책 등 다른 방식으로라도 개입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경우 자산가격 거품이 발생하고 경기의 부침은 오히려 증폭된다.

물론 우리가 경험한 경기부양책은 많은 문제점들을 드러낸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부양책이 잘못되었다고 해서 재정정책 자체를 활용하지 않는 것은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추경예산을 건설부문에 쏟아붓는 것만이 재정정책의 전부는 아니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자의적인 개입이, 건설경기 부양의 부작용이, 집권에 눈이 먼 정치가들의 선심성 예산이 우려된다면, ‘인위적이지 않고’ 정책시차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재정정책을 찾아 나설 일이다. ‘재정의 자동안정화장치’를 정비하고 개선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자동안정화장치란 경기변동에 대응해 정부가 별도의 조처를 취하지 않더라도 총수요가 자동적으로 조정되도록 하는 장치들을 지칭하는데, 누진적 조세제도와 사회보장지출이 여기에 포함된다. 경기가 침체해 사람들의 소득이 줄어들면, 세금이 자동적으로 줄어들고 대신 실업급여 등 사회보장지출이 늘어나 경기회복의 불씨가 제공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건설경기를 활성화해서라도 경기를 살려야 한다’거나 ‘인위적인 경기부양책은 절대 안된다’는 낡은 패러다임의 충돌에서 벗어나 효율적이고도 튼튼한 재정정책을 구체적으로 모색하는 것이다. 기존의 자동안정화장치로는 충분한지, 새롭게 추가될 수 있는 자동안정화장치로는 무엇이 있는지, 재정지출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조정해야 성장잠재력 확대에도 기여할 수 있는지, 재정집행의 전달경로를 어떻게 개선해 낭비와 비효율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 건전재정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등 고민할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박종현/진주산업대 산업경제학과 교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탄핵 윤석열!’ 그다음은? [세상읽기] 1.

‘탄핵 윤석열!’ 그다음은? [세상읽기]

아파트 경비의 3개월짜리 계약서 [6411의 목소리] 2.

아파트 경비의 3개월짜리 계약서 [6411의 목소리]

국회선 ‘김건희 국감 공방’, 김 여사는 ‘순방’ [10월7일 뉴스뷰리핑] 3.

국회선 ‘김건희 국감 공방’, 김 여사는 ‘순방’ [10월7일 뉴스뷰리핑]

‘김’이 곧 국가다? [아침햇발] 4.

‘김’이 곧 국가다? [아침햇발]

담배와 스마트폰 [유레카] 5.

담배와 스마트폰 [유레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