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큰 스웨덴’, 현실적이지 않다 / 이일영

등록 2006-08-27 18:00

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나라살림가족살림
아무래도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밀어붙일 모양이다. 그러나 꼭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아니더라도 개방경제를 지향함으로써 발생하는 역분배 효과에 대해서는 발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여당에서는 “작은 미국보다는 큰 네덜란드나 큰 스웨덴의 길을 고민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 현실에서 ‘큰 스웨덴’의 길은 현실성이 없다.

선진 복지국가의 모형은 크게 영미형, 대륙유럽형, 북유럽형으로 구분된다. 스웨덴을 대표로 하는 북유럽형은 모든 시민을 사회보장의 대상으로 하고, 완전고용을 지향한다. 고용가능성 증진을 위한 서비스, 요양·보육·주거·교육 등 사회적 서비스가 발달되어 있으나, 재정 안정에는 부담이 있다. 거대한 공공부문을 구성하는 여러 제도와 정책 요소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연계하는 것은, 스웨덴의 외부 환경, 내부 자원, 소규모성 등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쉽게 모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과 스웨덴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사회지출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2001년)을 비교해 보면, 스웨덴은 28.9%인데 한국은 6.1%에 불과하다. 흔히 복지 지출이 적다고 폄하되는 미국도 14.8% 수준이다. 한국의 조세 재분배율은 미국의 5분의 1, 스웨덴의 15분의 1일 뿐이다. 그리고 한국이 재원을 확대할 수 있는 여지도 제한되어 있다. 2004년 현재 조세부담률은 한국이 19.5%인데, 미국이 18.7%, 일본이 15.6%이다. 게다가 우리는 언젠가는 급속히 진행될 남북 통합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런 형편이니 ‘작은 미국’이냐 ‘큰 스웨덴’이냐를 묻는 것은, 초등학생이 미국 고등학교에 갈까 스웨덴 대학교에 갈까를 고민하는 모양이 되어 버린다. 모든 길이 미국으로 통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모든 길이 스웨덴으로 통하지도 않는다. 한국은 ‘한국-한반도의 길’을 더듬어 걸을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은 분배를 개선하기 위한 재정의 크기가 절대적·상대적으로 작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공공영역의 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물론 복지서비스를 분권화·지방화·민영화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다. 하지만 한국의 현재 조건에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하여 일정 영역에 복지 거점을 구축하는 것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스웨덴에서 배운다면, 보편주의적 복지정책의 형성이 인구문제와 관련된 위기의식을 배경으로 했으며, 농민층의 지지를 전략적으로 동원했다는 점이다. 한국 농업은 국제경쟁과 경영 내부의 노동력 위기로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우선은 이행 과정에서 직접지불제와 같은 안정 장치를 마련하되, 일부 지방부터 이를 보편적 복지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시도가 필요하다. 농업의 위기를 농촌지역 복지체제 확립의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이는 복지전략의 중요한 실험 거점과 경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형 복지전략에서 또 한 가지 짚어야 할 것은 중도적이고 공동체적인 가치를 중시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과거 진보적인 정부들이 재분배적 정책 체제를 형성했으나, 투표자들이 양극으로 분해되면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주도적으로 관철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스웨덴에서는 노동운동의 역할이 컸지만, 가톨릭·보수주의·자유주의 세력의 영향을 강조하는 논의도 많다.

한국에서 1987년 이후 전투적 운동이 격렬했지만, 진보적 가치의 확대·발전에는 실패했다. 자신을 변명하고 방어하는 데 급급해서는 진보세력의 미래가 없다. 이제 확대된 복지동맹을 구축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할 시점이다.

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탄핵 윤석열!’ 그다음은? [세상읽기] 1.

‘탄핵 윤석열!’ 그다음은? [세상읽기]

아파트 경비의 3개월짜리 계약서 [6411의 목소리] 2.

아파트 경비의 3개월짜리 계약서 [6411의 목소리]

국회선 ‘김건희 국감 공방’, 김 여사는 ‘순방’ [10월7일 뉴스뷰리핑] 3.

국회선 ‘김건희 국감 공방’, 김 여사는 ‘순방’ [10월7일 뉴스뷰리핑]

‘김’이 곧 국가다? [아침햇발] 4.

‘김’이 곧 국가다? [아침햇발]

담배와 스마트폰 [유레카] 5.

담배와 스마트폰 [유레카]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