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
유레카
구약성서의 모세가 하느님한테 받은 십계명 가운데는 ‘거짓말하지 말라’는 계율이 보이지 않는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소설 〈불멸〉에서 이에 주목했다. 그는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거짓말 말라’고 말하는 자는 그 이전에 ‘대답하라’라고 말했을 게 분명한데, 하느님은 타인에게 대답을 강요할 권리를 그 누구에게도 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오직 신만이 그런 (대답하라, 거짓말하지 말라) 명령을 내릴 수 있으나, 그분께서는 우리의 대답이 필요할 리 만무하다.” 다 알고 계시니까!
사실 누구에게 대답을 요구할 권리는 범죄를 심리하는 판사처럼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주어진다. 사법기관은 미란다 원칙에 따라 체포한 피의자에게 “당신은 묵비권을 갖고 있다”고 가장 먼저 알려야 한다. 쿤데라는 파시스트나 공산당 정권이 ‘대답을 강요하는’ 권리를 얼마나 남용했는지를 지적하고자 이런 글을 썼다.
그런데, 사람들에게 쉼없이 대답을 강요하는 직업이 있다. 저널리스트다. 쿤데라의 말처럼 그들은 “아무에게나, 어떤 주제에 관해서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성스런 권리를 지닌 자”다. 그들이 단지 질문할 권리만을 지녔다면, 질문을 받은 사람은 대답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저널리스트의 권력은 대답을 강요하는 권리에 그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의 그런 권력은 어디에서 나올까? 그들의 ‘대답을 강요하는 권리’는 말할 것도 없이 국민인 독자에게서 나올 것이다. 그들은 단지 독자들을 대신해 질문할 수 있을 뿐이다. 사행성 오락프로그램 ‘바다이야기’ 문제로 온나라가 시끄럽다. 이번에도 신문들이 각종 의혹 제기로 지면을 도배하고 있다. 그런데, 아니면 말고 식 의혹을 제기하며, 대답을 강요할 권리까지 독자가 저널리스트에게 준 것일까?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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