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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10만원짜리 휴대폰을 쓰고 싶다 / 신종원

등록 2006-09-03 21:13

신종원 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신종원 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나라살림가족살림
1996년 세계 최초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휴대폰의 상용화에 성공한 이후 한국 휴대폰은 단말기나 서비스의 성장 측면에서 큰 자랑거리다. 지금까지도 한국 휴대폰은 첨단 다기능폰으로 세계시장에서 비싸게 팔리고 있으며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다. 한국 시장은 그리 크지 않은 편이지만 휴대폰 시장에서는 세계를 향한 최고의 시험대였다. 지난 10년간 한국 휴대폰 성장의 밑바탕은 첨단 기능으로 무장한 다기능폰을 아무리 비싸도 사서 쓰는 소비자들의 왕성한 구매력이었다. 또 휴대폰의 첨단 기능을 넘나들며 2030년대의 캘린더 요일이 잘못되었음을 찾아내는 등 작은 문제도 지나치지 않는 젊은 소비자들의 적극성이 한국 휴대폰의 질적인 성장을 뒷받침해 주었다.

5월 현재 3913만명의 휴대폰 가입자, 곧 4천만 가입자 시대를 내다보는 지금 우리 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휴대폰의 사양은 카메라, 엠피3(MP3)을 지나 손안의 텔레비전인 디엠비(DMB) 폰의 보편화로 가고 있다. 머지않아 동영상 송수신 폰이 기본 사양이 될 것이다.

40대 자영업을 하는 김씨. 몇 해째 쓰고 있는 휴대폰이 너무 낡아 바꿔야겠다고 작심하고 대리점에 들렀다. 단말기 보조금으로 부담 없이 구입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디엠비 폰이다 해서 웬만한 휴대폰은 40만~50만원을 줘야 한단다. 제일 싼 것을 물어보니 보조금 적용해서 20만원 가까이 지급해야 한다고 한다. 카메라 엠피3, 디엠비 다 필요없고 그저 음성통화 잘되고 품질좋은 휴대폰이 필요한데 찾을 수가 없다. 30대 회사원 박씨. 연로한 아버지를 위해 자판과 액정화면이 크고 기능이 단순한 것을 찾는데 찾을 수 없다. 20대 대학원생 최씨. 요즘은 발품만 팔면 휴대폰을 그저 바꿀 수도 있겠다 싶어 대리점, 인터넷까지 뒤져보았다. 과연 몇만원, 사실상 공짜 수준의 휴대폰도 있었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나니 막상 선택할 만한 게 없었다. 보조금 기회를 사용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번호이동이나 특정한 요금약정까지 요구하는 등, 선택할 만한 대안이 못 됐다.

최근 한국 휴대폰의 부진을 지적하는 뉴스들이 자주 보인다. 인도·남미 등 신흥시장에 저가폰으로 대응한 노키아 모토롤라보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여 점유율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저가폰 없이 고가폰만을 고집해 온 한국 휴대폰 회사들의 시장전략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흔히 세계 시장에서 100달러 이하의 휴대폰을 저가폰으로 부른다. 이미 세계 휴대폰 시장은 50달러 이하 또는 30달러 이하의 휴대폰 시장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구조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세계 시장 공략을 위한 최적의 시험대인 한국에는 사실상 10만원 이하의 저가폰은 없다. 송수신 기능을 중심으로 한, 저가 비첨단 소기능 휴대폰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손에 대형 냉장고보다 비싼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소비자들만 상정한 한국의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슬림·첨단 다기능 폰 개발 경쟁만 해온 탓이다. 사실상 카메라 없는 휴대폰이 없는, 30만원대 이하의 휴대폰이 없는 휴대폰 시장은 정상이 아니다. 최첨단 다기능을 갖춘 수백만원짜리 휴대폰이 나와도 좋다. 그러나 동시에 5만원짜리, 10만원짜리 휴대폰도 같은 대리점 진열대에 자리잡고 있어야 한다. 저가폰은 기대만큼 팔리지 않아 수지를 맞출 수 없다는 휴대폰 제조사들의 변명은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정보통신 시장의 성장에 기여해온 우리 소비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10만원짜리 휴대폰을 선택할 권리를 소비자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신종원 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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