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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오보 / 정남구

등록 2006-09-27 18:43

정남구 기자
정남구 기자
유레카
1986년 필리핀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이 민중혁명으로 대통령직을 쫓겨나던 날, 미국 〈에이비시〉(ABC) 방송은 운좋게 말라카낭궁 안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카메라의 눈길을 끈 것은 벽장에 있던, 각양각색의 3천여 켤레에 이르는 대통령 부인 이멜다의 신발이었다. 에이비시는 뉴스 프로그램인 ‘나이트라인’을 통해 그 신발들을 세계인들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대통령 부부의 사치·부패’를 한껏 드러냈다.

이멜다는 왜 그 많은 신발을 보관하고 있었을까? 이멜다의 변호사는 “필리핀에 신발공장이 많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영부인도 우리 회사 신발을 신는다”고 홍보하기 위해 신발회사가 홍보용으로 매년 수백 켤레의 신발을 영부인에게 건넸는데, 대부분이 맞지 않아 신을 수 없었지만 그대로 보관해두고 있었다는 설명이었다. 안토니 프랫카니스의 〈프로파간다 시대의 설득전략〉이란 책에 나오는 얘기다.

변호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이멜다는 사치로 그 많은 신발을 산 것은 아니다. 형사재판에서 이멜다는 고발된 모든 혐의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부패의 상징으로 영원히 남을 신발에 대한 기억까지 사람들의 뇌리에서 떨쳐낼 수는 없었다. 언론은 이멜다 쪽의 해명을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이멜다가 내년에 마닐라 시장 선거에 출마할 수도 있다고 그의 첫째딸이 밝혔다는 외신 보도가 최근 있었다. 그 억울함을 이제라도 풀어보려는 것인가?

국내 언론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정보분석관을 지낸 로버트 칼린의 글로 대형 오보를 냈다. 칼린이 북한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의 처지에서 가상으로 쓴 글을 실제 강 부상이 “북한이 핵무기를 5~6개 보유하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보도한 것이다. 누리꾼들 말로 ‘낚인’ 셈인데, 너무 큰 오보라 곧 정정이 이뤄진 게 ‘이멜다의 신발’과는 다른 점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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