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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세상읽기] 아베 총리의 방한과 역사인식 / 이종원

등록 2006-10-03 18:21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이종원 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세상읽기
아베 총리의 한국과 중국 방문이 전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물밑에서 교섭이 진행되고는 있었지만 예상보다 빠른 움직임이다. 갓 출범한 아베 정권으로서는 초반부터 큰 외교적 성과를 올렸다. 국민적 인기는 높지만 지도력과 실행력의 불안이라는 약점을 안고 있었던 아베 총리로서는 행동력과 수완을 유감없이 과시한 셈이다. 10월에 당장 보궐선거가 닥치고 내년부터 통일지방선거, 참의원 선거로 정치의 계절을 맞아 국내 정치 과제에서는 가시적인 성과를 당장 올릴 전망이 보이지 않는 아베 정권에는 매우 큰 ‘선물’이다. 문제는 정상회담 재개에 동의한 한국과 중국이 과연 무엇을 얻었으며, 그 원칙과 실리는 어디에 있는가 하는 점이다.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가 어떻게 처리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다. 특히 참배 중지 약속을 요구해 온 중국의 원칙적 입장이 어떻게 되었는지, 중-일 간에 어떤 ‘타협’이 이루어졌는지, 여러 가지 관측이 있지만 뚜껑을 열어보아야 알 일이다.

아베 총리는 현재까지는 ‘애매성의 전략’으로 정면돌파하려는 기세다. 참배 사실을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고 애매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자신의 신념과 참배 추진파에 기본적인 배려를 함과 동시에, 외교적 쟁점화를 회피한다는 전략이다. 야스쿠니 문제뿐만 아니라 이념적 과제와 관련해서는 애매한 태도가 두드러진다. 총리로서 처음 행한 소신표명 연설도 평소의 국가주의 복고주의적인 ‘소신’을 감춘 채 추상적인 미사여구와 타협적인 문구로 일관된 무미건조한 내용이었다. 아베 정권 지속의 최대 관문인 내년 7월의 참의원 선거까지는 ‘안전운행’을 하기로 작정한 것 같다.

‘애매성의 전략’만으로 야스쿠니 문제에 외교적 타협을 하려는 움직임이 한국과 중국 정부에 있다면 이는 올바른 판단이 아니다. 물론 야스쿠니 문제를 외교적 쟁점화하면서 정상외교를 중단하는 등의 극약 처방은 한국과 중국에도 여러 가지 부담을 가져오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외부로부터의 비판만으로는 일본 국내에 ‘외압’에 대한 단순 논리의 반발을 초래해서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그간의 외교적 비판으로 야스쿠니 신사가 지니는 문제성이 일본 국내 및 국제적으로 인식되게 된 것은 큰 성과다. 야스쿠니를 대체할 추도시설 건립 등 구체적 대안에 관해서도 사회적 관심과 논의가 확산되어 왔다. 안이한 외교적 타협은 이런 노력을 물거품으로 돌릴 수도 있다. 한국과 중국 외교의 원칙적 자세의 일관성이라는 면에서도 야스쿠니 문제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지향하는 방향성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역사문제를 외교 카드로 휘두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원칙을 쉽사리 바꾸는 모습도 또한 옳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역사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기본문서인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에 대한 아베 총리 자신의 인식이 지극히 모호하며, 사실상 이를 부인하는 언동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이다.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명문화한 무라야마 담화는 냉전 종결 이후 새로운 상황에서 일본이 아시아 각국과 “미래지향의 관계 구축”을 추진하는 토대였다. 1998년의 한-일 파트너십 선언도 이를 기초로 한 것이다.

한-일 및 중-일 간의 정상외교 부활이 서로의 전술적 계산에 의한 편의적 차원에 좌우될 경우 한-중-일 사이의 안정적인 관계 구축은 기대하기 힘들다. 불투명한 지역정세에서 신뢰구축을 위해 최소한의 역사인식의 토대를 다지는 회담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종원/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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