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유레카
노벨 평화상을 받은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가 던진 중요한 메시지는 발상의 전환이다. 가진 것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면 떼이기 쉬워 은행이 망한다는 주류의 금융이론을 뒤집은 것이다. 어떤 담보나 보증 없이 가난뱅이들에게 돈을 빌려주고도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새로운 모델을 증명했다.
그의 주도로 만들어진 방글라데시의 빈민은행(그라민은행)은 무일푼의 거지들에게도 대출을 해준다. 이들에게는 특별히 무이자다. 대출 뒤에는 아주 조그만 물건이라도 팔아서 스스로 수입을 올리도록 권유한다. 지난해 대출받은 거지들은 4만5천명에 이른다. 이들의 상환율은 약 50%로, 일반 빈민의 상환율 98%에는 크게 못미친다. 그러나 빈민은행은 여기서 도리어 희망을 읽는다. 그들 가운데 절반 정도가 뭔가 일을 하기 시작함으로써 자활의지를 찾았다는 것이다.
유누스 박사의 이런 철학은 세계은행도 움직였다. 절대로 무상으로 돈을 주지 않고 비정부 기구는 상대하지 않는 원칙을 깨고, 세계은행은 200만달러를 그라민 쪽에 무상으로 원조했다. 빈곤 청산에 대한 빈민은행의 바른 접근과 그 가능성을 높이 샀던 까닭이다.
‘유누스 배우기’를 가장 먼저 한 정치인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다. 클린턴은 1987년 미국 아칸소 주지사 시절 유누스 박사를 리틀록으로 초청해 만났다. 아칸소의 가난한 농촌마을에 미국식 빈민은행을 도입하려는 뜻에서였다. 결국 ‘선의 기금’(Good Faith Fund)이 아칸소에 설립된 뒤 미국 전역에 비슷한 모델이 퍼져나갔다.
우리나라에도 ‘신나는 조합’과 ‘사회연대은행’이 몇 해 전부터 무담보 대출사업을 벌이고 있으나, 아직 시범단계다. 서울평화상도 받은 유누스 박사가 다시 한국에 온다. 상 주는데 그칠 게 아니라 그의 정신을 제대로 배워 실천하는 일이 더 필요하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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