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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국가인권위의 진짜 문제는 / 오창익

등록 2006-10-26 18:03수정 2006-10-26 18:08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오창익 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야!한국사회
별안간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그만두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수구세력의 반격이 잇따랐다. 한 언론은 인권위가 ‘좌파 사회평론가들의 놀이터’라며 문을 닫으라고 윽박지른다. 야당도 몰아세우기는 마찬가지다. 인권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도 없는 막말이다. 인권위의 존재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 법원을 통한 인권구제도 가능하겠지만,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국제인권규약이 한국에서 실효성을 갖도록 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인권위는 인권 피해자들에게 숨통 같은 구실을 한다. 유엔이 국가인권기구의 설립을 촉구하고 있거나, 인권 선진국들이 인권기구를 운영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인권위를 향한 막말은 터무니없지만, 중요한 것은 인권위에도 이런 조롱의 빌미를 제공한 잘못이 있다는 것이다. 인권위 위원장은 위원들과 권한 다툼이 있었다고 했다. 인사자문위원장을 상임위원과 사무총장 가운데 누가 맡을 것인지를 두고 잦은 충돌이 있었다는 거다. 어차피 누군가는 맡아야 할 자리를 놓고 다투다가 임기가 정해진 위원장이 그만둔 것은 누가 뭐래도 무책임하고 부적절한 행동이다. 위원장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던 위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중요한 원칙이나 인권 현안이 아니라, 내부의 자리 다툼으로 허송세월을 했다.

망측한 일은 이번뿐이 아니었다. 고위 간부가 잡지 기고를 통해 폭탄주를 마시고 골프친 것을 자랑하며 너스레를 떨고, 어떤 조사관은 진정인의 등을 쳐 돈푼을 뜯어내기도 했다. 이런 식의 도덕적 일탈은 일부의 일이겠지만, 정작 심각한 문제는 역량과 열정도 함량 미달이라는 것이다. 특히 조사 역량은 검찰, 경찰, 교정 등 조사대상 기관 종사자들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 제대로 된 교육체계도 없고, 기초적인 업무 매뉴얼도 없다. 신입직원이 오면 대충 사무실 배치나 익히고 곧바로 실무에 투입된다. 조사의 기본도 갖추지 못했으니 역량을 발휘할 턱이 없다. 이쯤 되니 피조사기관도 인권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역량이 부족하니 진정사건은 쌓이게 되고, 그만큼 진정인의 불만도 쌓이고 있다.

위원 중에는 몇 달씩 해외에 머물거나 한달에 두 번 하는 회의 말고는 아무 활동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위원장이 가끔 복지시설 등을 방문하는 것 말고 위원들이 인권현장을 누비며 인권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호민관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인권위 직원들이 검은 양복만을 고집하지 않고 자유로운 복장을 하고 있다든지, 호기롭게 청사 내부에 흡연실을 만들기도 했다든지 하는 것 말고, 좀 더 본질적인 기풍의 차이, 이를테면 치열한 인권정신 같은 것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니 인권위 때문에 세금 내는 것이 아깝지 않다거나 그래도 인권위 때문에 한국에서 살 만하다고 말하는 시민도 찾아보기 어렵다.

인권위는 민주화운동의 성과로 탄생했다. 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 그리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열망이 오늘의 인권위를 가능케 했다. 그런 인권위가 사회적 약자, 가난한 사람들과 얼마나 함께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인권위가 엄격한 도덕성을 바탕으로, 실력을 갖추고 열정적으로 인권 피해자들과 함께했더라면, 인권위 문을 닫으라는 막말이 튀어나올 때, 시민들이 ‘우리 인권위’를 지키고자 수구언론과 무책임한 야당과 싸웠을 것이다. 아쉽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인권위 구성원들의 맹성이 더 절실하다. 쓸모 있는 인권기구가 되기 위해 철저한 성찰과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내일 당장 그만둬도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뛰고 또 뛰는 방법밖에 없다.

오창익/인권실천시민연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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