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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사진 속의 선생님들 /이명원

등록 2006-11-02 19:17

야!한국사회
어느날 우연히 보게 된 조간신문 속 한 장의 사진이 오래도록 내 눈길을 머물게 했다. 그 사진 속의 사람들은 손목과 허리에 포승줄이 묶여 있었다. 그런데 그 상황과는 자못 이질적인 환한 미소가 프레임 밖으로 번져 나오는 듯, 그렇게 화창한 것은 다소 기이해 보였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주최한 교원평가 공청회의 진행 와중에 신속하게 구속된 이민숙 전교조 대변인을 포함한 세 사람의 교사였다.

그리고 다시 어느 날, 나는 또 한 장의 사진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괴로운 느낌에 빠져들었다. 한 손에 든 꽃은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는데, 꽃을 든 사내의 표정은 더없이 착잡해 보였다. 급식비 유용 등 재단 비리를 폭로한 이유로 동일여고에서 해직되었던 박승진 교사의 사진이었는데, 함께 해직당한 음영소·조연희 교사의 어두운 표정도 함께 보였다. ‘복직명령에도 교문은 열리지 않았다’ 보도기사의 제목은 그렇게 써 있었다.

또 한 장의 사진도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한 사내가 피켓을 목에 걸고 검게 그을린 얼굴로 대법원 앞에 서 있었다. 표정이 밝을 리 없었는데, 그는 ‘수학자는 왜 싸우는가’라고 세상을 향해 벌써 1년 넘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1996년 대학별 본고사 입시문제 오류를 지적한 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재임용에 탈락했던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교수의 1인 시위 광경을 담은 사진이었다.

그 사진 속의 사람들은 모두 ‘선생님’들이었다. 호송차를 타고 구치소로 가고 있는 교사들, 닫힌 교문 앞에서 고개를 떨구며 단식농성장으로 돌아가고 있는 교사들, 대법원 앞에서 묵언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 해직교수. 그들에게 학교는 가없이 멀고, 감옥과 천막과 거리는 싸늘하게도 가까웠다.

겸연쩍게도 해직교수인 나에게도, 꿈속에서 가끔 학생들과 강의실과 다른 선생들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법원을 들락거리게 되자, 부조리한 세상에서 좋은 선생으로 살겠다는 희망이 대체로 무모해 보인다는 느낌에 빠져들게 되면서 마음이 아픈 잇몸처럼 시려왔다. 무슨 거대한 신념 때문이 아니라, 교육의 가장 근원적인 가치일 사람에 대한 열린 마음가짐과 관용이 시대착오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이러니의 강퍅함 때문일까.

교육개혁을 하겠다는 이 정부에서 선생들에게 함부로 포승줄을 묶는 일이 여전하고, 교권과 학습권을 보호해야 할 교육부가 발흥하는 비리사학을 방치하고, 공명정대해야 할 법원의 저울추가 힘 있는 자들에게 기울어가는 것처럼 자주 느껴질 때, 이 시대에 가르치고 배우는 일은 과연 성립 가능한 개념인가. 때때로 비통하게 자문해 본다.

교육의 근원적인 의미를 떠나, 상식이 현실에 의해 배반당하는 것이 일상화된 오늘의 상황이 의문스럽다. 동시에 우리가 교양시민으로서 믿고 싶은 진실이, 한 사회의 관행과 통념과 습속들에 의해 조소당하는 뿌리 깊은 관성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한다. 학교에 있어야 할 선생들이 감옥과 거리와 법원으로 흩어지고, 어린 학생들이 늦은 새벽까지 사설 입시학원에서 코피 흘리는 오늘.

지성에 대한 존중은 간데없고 잘 포장된 통조림 깡통 같은 맞춤형 지식이 우대받는 사회. 현실에 대한 사유조차도 대치동 학원가에서 속성으로 모의고사를 치르는 학생들. 초등학생조차 대학입시 때문에 논술시장으로 내몰리는가 하면, 짝 잃은 외기러기처럼 기어이 국경을 넘고자 하는 디지털 맹모삼천지교 시대의 기묘한 교육 노마디즘.


참다운 교육의 가치는 어디서 졸고 있는가. 눈 뜨라.

이명원/문학평론가·〈비평과 전망〉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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