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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은행과 우산 / 정남구

등록 2006-11-08 19:10수정 2006-11-09 11:14

정남구 기자
정남구 기자
유레카
미국 최대의 종합 금융그룹인 시티그룹의 로고에는 빨간 우산이 그려져 있다. 애초 이 로고는 미국 4대 보험사의 하나인 트래블러스그룹의 것이었다. 그게 시티그룹의 상징이 된 것은 1998년 10월 시티은행의 지주회사인 시티코프와 트래블러스가 시티그룹으로 한 살림을 차리면서부터다. 이름은 인지도가 높은 ‘시티’를 쓰되, 로고는 트래블러스의 것을 쓰기로 한 것이다.

트래블러스의 우산은 보험사의 이미지에 잘 맞는다. “비오는 날(재해·사고)에 대비해 손님을 보호한다”는 뜻이다. 그럴듯하다. 그런데, 그것이 시티그룹으로 넘어간 뒤에는 “은행업무에서 어떤 외부적인 위험으로부터도 안전하게 보호해 주겠다”는 모호한 뜻으로 바뀌었다. 그저 ‘안전한 은행’이라는 뜻만 남은 셈이다.

마크 트웨인의 말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겐 은행과 우산의 조합은 왠지 어색하다. 그는 “은행은 날씨가 맑을 때 우산을 빌려줬다가 비가 오면 뺏어간다”고 했다. 우리나라 한 은행도 텔레비전 광고에 우산을 등장시켜, “비바람이 몰아칠 때 더 큰 우산이 되겠다”고 한다. 마크 트웨인이 틀렸다는 걸 증명해 보이겠다는 것인데, 그런 약속을 정말 지킬 수 있을까?

사실 마크 트웨인의 비판에 오늘날 은행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은행도 이윤에 목마른 기업이라 욕을 먹을지언정 돈벌이를 포기할 리 없다. 돈 없는 사람일수록 더 높은 금리로 이자를 받고, 제때 돈 갚기 어려운 사람부터 대출을 회수하는 게 은행을 비롯한 대부자들의 논리다. 비올 때 우산을 제때 뺏을 줄 알아야 돈을 버는 것이다. 부동산 투기 열풍으로 주택 담보 대출이 계속 늘면서 가계의 부채 상환 능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대출 대부분은 변동금리에다, 만기도 짧다. 돈을 빌리는 사람들은 이제라도 은행이 우산을 돌려달라고 할 때를 대비해야 한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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