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유레카
세월의 흐름 속에 세상도 사람도 변한다. 외모나 형태뿐 아니라 생각이나 가치관조차 180도 달라지기도 한다. 1980년대 주사파의 대부였던 김영환씨가 반북주의자로 변한 것이나, 일제의 침탈을 비판했던 안병직 교수가 식민지 근대화론자로 탈바꿈한 것 등이 가까운 보기다. 또 운동권에서 옛 여당인 신한국당으로 옮겼던 김문수 경기지사는 최근 한 강연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됐을 때 만세를 불렀던 것”을 ‘반성’했다.
사람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는데도 자신에 대한 세상의 평이나 말이 짧은 기간에 완전히 달라진다면 어떨까. 여간 심지가 굳지 않으면 자아를 상실하거나 방향감과 판단력을 잃을지도 모른다.
<조선일보>는 2003년 8월21일치 ‘여성 헌법재판관 등장을 환영한다’는 사설에서 당시 대법원장이 추천한 전효숙 재판관 지명자를 두고 “이념적으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법정에서 당사자들 주장에 귀를 기울이는 능력과 신망을 갖춘 판사라는 평가를 받는 점도 마음 든든하다”고 밝혔다. 전날치 4면 기사에서는 “여성 보호, 소수자 보호라는 시대적 요청에 가장 적합한 후보자라는 평가”라고 썼다.
그러나 3년이 흐른 뒤 소수자 보호 성향은 이 신문이 전씨의 헌법재판소장 지명을 반대하는 이유가 됐다. “전 재판관은 지금까지 재판에서 주로 다수보다 소수 편에 서 왔다. … (대통령의) 다른 (사시) 동기인 전 재판관의 헌재소장 내정설을 두고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 것”(2006.8.15 사설)이라고 썼다. 어제치 4면은 “코드로 떴다가 코드로 졌다”며 전씨를 아예 ‘노무현 사람’으로 다뤘다.
다행히 전씨는 이런 찧고 까부는 말들이 춤추는데도 평상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는 물러나면서 “평범한 국민의 한 사람으로 돌아가 국민의 안녕과 국가의 발전을 위해 기원하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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