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미 /대중예술평론가
야!한국사회
올해 회갑을 맞으신 대학 은사님이 술자리에서 이런 넋두리를 하셨다. “글쎄, 애들이 수업시간에 떠든다. 이걸 도대체 어떡해야 하니?”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학 교수나 강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중년들은 도대체 상상이 되지 않는다는 얼굴 표정을 짓는다. 도대체 초등학생도 중학생도 아니고, 다 큰 대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떠든단 말인가,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런 반응들이다.
노교수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루는 어떤 녀석이 수업 중에 일어나더니 저쪽 끝으로 걸어가는 거야. 내가 왜 그러냐고 했더니, 글쎄 지우개 빌리러 간다는 거야. 하, 참 기가 막혀서. 그래서 왜 옆 자리 학생한테 안 빌리고 거기 멀리까지 가냐고 그랬더니, ‘제가요, (멀리 있는 한 학생을 가리키며) 쟤랑 친하걸랑요’ 그러는 거야.” 교수 혹은 강사인 40대의 제자들은 이 민망한 상황을 타개할 뾰족한 방도를 알려드릴 수가 없었다. 대학 강의실에서 매를 들고 “조용히 해!”를 외치며 강의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시쳇말로 ‘쪼잔하게’ 점수 깎겠다고 야단을 칠 성품도 못되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점수를 깎겠다는 협박으로 겨우 조용한 수업시간을 만들어 놓아도 문제는 남는다. 적지 않은 학생들이 교수와 눈을 맞추며 교감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강의도 일종의 대화여서, 학생의 눈빛에서 알아듣는다는 반응이 와야만 그 다음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요즘 대학생들의 상당수는 교수와 눈을 맞추지 않으며 손으로는 휴대전화 메시지를 날리고 노트를 뒤적거린다고 부스럭거린다. 물론 손으로 다른 짓을 한다고 강의를 듣지 않는 것은 아니나, 반응이 없다는 것은 강의에 치명적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교수는 거의 개그콘서트 같은 쇼를 보여주어야 하며, 그제서야 학생들의 눈빛이 반짝거린다.
이제 교실붕괴는 대학에까지 번지고 있는 셈이다. 도대체 왜 이러는 것일까? 우선 요즘 학생들은 아침부터 밤중까지, 유아 때부터 계속 너무 많은 선생들과 만나며 살아왔다는 것이 그 한 이유일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선생 앞에서 긴장을 하지 않는다. (일일이 긴장하고 살았다면 이들은 벌써 스트레스로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뿐만은 아니다. 자신 이외의 타인의 처지에 대해 생각하고 이를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상황파악 능력이 크게 떨어져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즉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를 읽어내는 능력이 매우 낮은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언어소통 능력이 낮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라고 보인다. 그러므로 이는 단순히 ‘한국어능력시험’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타인을 배려하는 능력, 총체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 상황판단 능력 등의 문제인 것이다. 그러니 강의하는 교수가 눈빛으로 대화할 소통대상으로 보이질 않고, 그저 텔레비전 화면 속의 강사 정도로 느껴지는 것이리라.
흥미로운 것은, 대학교 3학년 즈음이 되면 이런 태도가 크게 호전된다는 것이다. 하긴 고3 때까지 어린애처럼 모든 것을 떠먹여 주어야만 받아들였던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갔다고 하루아침에 어른이 될 리 만무이다. 특히 군대를 다녀온 학생들은, 확실히 교수의 말에 눈빛으로 반응한다. 그저 똑바로 잘 앉아있는 훈련을 해서만은 아닌 듯하다. 군대 체험이란, 드디어 자신이 부모의 보호를 받지 않고 생면부지의 타인과 함께 그들을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는 엄연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든 셈이다. 대학생들의 수업태도 향상을 위해 여학생들도 군대에 보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다 헛웃음이 나왔다.
이영미 /대중예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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