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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암 생존자들의 또다른 싸움 / 서홍관

등록 2006-12-18 17:28

서홍관/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서홍관/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야!한국사회
유방암을 치료한 지 4년째 되는 피우진 중령이 군 내부의 심신장애 심사에서 2급 판정을 받아 바라지 않는 전역을 당하게 되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현재 국민 셋 중 한 사람꼴로 평생 한번은 암에 걸리고 넷 중 한 사람이 암으로 숨질 정도로 암은 우리의 가까운 현실이 되었다. 암을 예방하고 일찍 찾아내고 치료하는 수준은 꾸준히 높아지고 있지만 암을 이겨낸 암 생존자들이 사회에 복귀하는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시기에 피 중령 사건이 공론화한 셈이다.

암을 극복한 암 생존자들의 수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며 이들이 힘겨운 투병 끝에 이후의 생애를 어떻게 사회에 복귀하여 경제·사회적으로 적응해 나갈 것인지 하는 문제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또 하나의 숙제다.

피 중령의 경우 2005년 10월 군 인사법 시행규칙상 전역사유에 해당하는 심신장애 2급 판정을 받은 뒤, 올해 9월14일에 있었던 육군전역심사위원회에서 전역 결정이 내려져 지난 11월30일 강제 전역되었고, 국방부에 제기한 전역처분취소 인사소청이 12월13일 기각되었다. 2005년 5월 정기 체력검정의 모든 항목에서 특급과 1급을 받아 군복무에 체력적인 문제도 전혀 없음이 증명된 피 중령이 심신장애 2급으로 판정된 근거는 무엇인가?

군 인사법의 심신장애 등급표에는, ‘생명 연장이나 완치를 위하여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 또는 치료가 필요하지만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에는 심신장애 2급 판정을 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피 중령의 경우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도 물론 아니려니와, 이제 항암요법이나 방사선 치료가 필요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몇 달만 있으면 완치 판정을 눈앞에 두었는데 무엇이 문제가 되어 심신장애자로 판정했는지 알 길이 없다.

군인이 심신장애 상태라면 전역시키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피 중령은 해남 땅끝 마을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400여㎞에 이르는 길을 23일에 걸쳐 돌파할 정도의 건전한 심신을 가지고 있다. 피 중령이 잃은 것이라고는 암 투병과정에서 상실한 유방밖에는 없다. 이제 국방부는 유방이 전투능력이나 업무 수행에 필요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예전에 불치병의 대명사는 백혈병이었다. 그래서 영화의 주인공이 백혈병에 걸리면 인생을 정리하게 되고, 마지막 남은 생애 동안 뜨겁고 지순한 사랑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되었다. 이번에 피 중령의 건강상태를 판정한 군 인사법과 시행규칙은 197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소아의 급성 임파구성 백혈병은 완치율이 무려 80%에 이른다. 소수만 완치가 되지 않고 대다수가 완치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제 백혈병으로 눈물을 뿌리는 영화를 만들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을지도 모른다. 이런 변화된 시대에 삼십년 전 잣대로 판단하는 것은 명백히 그른 일이다.

암 생존율은 꾸준히 높아져서 모든 암을 합해서 5년 생존율이 거의 50%에 이른다. 곧 암에 걸린 사람의 절반은 완치가 된다는 이야기다. 암 생존자 수는 급증할 것이다. 성실하게 일하고자 하는 암 생존자들을 사회와 직장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힙겹게 암과 싸워 사회에 복귀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의욕을 꺾는 일이 될 것이다. 국방부는 암이 불치의 병이던 수십 년 전의 잘못된 지표에 맞추어 판단하지 말고 새로운 기준을 세워 시대에 발맞추어 나가기를 바란다.


서홍관/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 책임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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