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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주몽은 왜 앞머리를 내렸을까? / 이영미

등록 2006-12-25 17:31

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야!한국사회
요즘 드라마 <주몽>을 보면서 그의 앞머리에 자꾸 신경이 쓰인다. 왜 갑자기 앞머리를 내렸을까?

순정만화 속 인물의 머리카락은 매우 흥미로운 대상이다. 그것은 단순히 색깔과 모양으로 각 인물을 구별하게 해주는 요소 정도에 그치지 않고, 그 인물의 이미지와 성격, 혹은 심리상태까지 섬세하게 표현해주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여성 인물들의 경우 머리카락의 화려함은 주로 긴 머리카락의 휘날림에서 발휘된다. 큰 눈이 초롱초롱 빛나야 하니 앞머리는 눈을 가리지 않고, 대신 옆과 뒤의 머리카락이 다양한 모습을 드러낸다. 외롭게 침대에 몸을 내던졌을 때에 시트를 뒤덮는 머리카락의 웨이브, 언덕 위에 서서 바람에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슬픈 모습, 혹은 악마적인 파괴의 욕망을 부글부글 끓이면서 화면 가득 이글거리는 느낌으로 채운 마녀의 긴 곱슬머리 등을 생각해 보라.

이에 비해 순정만화의 남성 주인공들은 주로 앞머리가 특징이다. 긴 앞머리로 눈을 가리지 않는 남자는 일단 주인공이 아니라고 보아도 될 정도로 전형적인 모습이다. 남자 주인공이라고 눈빛이 빛나지 않기야 하겠는가. 단지 그들은 눈을 뒤덮은 앞머리 뒤편으로 눈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머리카락 뒤로 눈을 감추고 있는 인물은, 세상과 완전히 화합하지 못한 내면을 지닌 고민스러운 주인공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의 눈은 세상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도 그의 눈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그의 여린 눈과 고민스러운 내면은 거친 머리카락 뒤에 위태롭게 숨어 있다.

그렇다고 이러한 남자 주인공이 나약한 것은 아니다. 여리디 여린 긴 손가락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몸은 단단한 근육질이다. 흔히 대하 순정만화의 남자 주인공들은 놀라운 무협 솜씨를 지니고 있는 한 나라의 최고 장군이거나 후계자로, 나라와 왕을 위하여 칼을 휘둘러 늘 이긴다. 그러나 그럴 때에도 그들의 눈은 늘 앞머리 뒤에 숨어 있다. 그의 눈이 반짝 빛나는 때는, 명분과 힘의 세계로부터 한 발짝 물러나 자신의 여리고 고민스러운 내면을 드러낼 때이다. 그래서 앞머리 내린 남성들은, 무력과 금력, 정치적 계략이 판치는 냉혹한 현실 세계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내면적으로 인간미 있는 고민을 잃지 않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주는 결정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최근 퓨전 사극에서 대하 순정만화적 표현이 늘어나면서 앞머리 내린 남성 인물을 종종 만난다. 예컨대 드라마 <다모>의 김민준이 대표적인 경우이며, 그 앞머리야말로 사랑과 혁명 사이에 갈등하는 그의 내면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그런데 최근 <주몽>에서 주몽이라는 인물은, 그다지 복잡한 내면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어리버리하게 자신의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초반부의 주몽이 훨씬 복잡한 내면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 천명을 깨닫고 강대한 힘조차 지닌 그는, 오로지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단순한 인물이 되어 버렸다.

나는 그의 앞머리가 이러한 인물의 단순성을 적절히 보완해주는 헤어디자인이라고 본다. 그 앞머리 때문에, 실제 극에서 드러나지 않는데도 그의 내면은 복잡하고 매우 인간미 넘칠 것이라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만약 그가 예전처럼 이마를 드러내고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모습으로, 늘 ‘오마협’(오이, 마리, 협보라는 세 명의 부하)을 데리고 승승장구 하고 있다면, 영포 왕자만큼도 재미없는 인물이 되지 않았을까?

이미지만으로 힘을 발휘한다는 것, 나는 가끔 이 사실이 섬뜩할 정도로 무섭다. 대선이 있는 내년, 우리는 또 얼마나 많은 이미지들과 고투를 해야 할 것인가.


이영미/대중예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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