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기자
유레카
영어의 ‘향수(nostalgia)’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심신이 아픈 상태”란 뜻의 합성어라고 한다. 고향을 멀리 떠나 이국의 전장을 누비던 옛 용병들이 실제 걸리던 ‘병’이다. 오늘날 향수는 병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한때 좋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약간은 서글픔이 배어 있는 마음이다.
기나긴 경기침체가 이어지면서 중산층과 서민의 등이 휘어지는 요즘, 사람들을 향수에 젖게 하는 건 ‘고성장 시대’다. 종신 권력을 위해 민주주의와 인권을 무참히 짓밟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오로지 ‘경제 건설자’란 이미지로 역대 최고 대통령으로 꼽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소설가 밀란 쿤데라는 “저녁 노을에 비치면 모든 것은 향수의 유혹적인 빛을 띠고 나타난다. 단두대까지도 그렇다”고 했다. 섬뜩한 얘기다.
‘박정희 향수’는 꽤 오래 전 싹이 텄다. 아파트 반값 공약을 내세우며 1992년 대통령 선거에 나선 정주영, 97년 대선에서 박정희와 닮은 모습의 이인제씨가 제 3후보로 나와, 박정희 향수를 밑거름으로 꽤 많은 지지를 얻었다. 사람들이 올해 대선 예비주자를 판단하면서도 ‘도덕성’보다 ‘추진력’을 훨씬 높게 친다고 한다. ‘경제만 살린다면 좋다’는 얘긴데, 박정희 향수가 더욱 짙어진 모습이다.
현실도피적인 향수가 넘쳐나는 건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다. 6월 민주항쟁 20돌을 맞은 올해, 한켠에선 ‘6월 향수’도 부풀어오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성을 거쳐 새 희망을 주는 쪽으로 승화하지 못하면, 도리어 박정희 향수를 부채질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사회심리학자 프레드 데이비스는 ‘도피적인 향수’만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얼마나 정당한지 따져보는 ‘반성적 향수’, 미래에 대해 무언가 두려움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따져보는 ‘해석적 향수’도 있다고 했다. 그나마 위안을 주는 말이다.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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