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유레카
왕조 시대의 국가 번영은 왕위 계승이 현명한 후계자에게 얼마나 정통성 있게 이뤄지느냐에 달렸다. 로마 5현제의 양자 선택이나 중국 청나라의 태자밀건법(1월10일치 30면 유레카)은 이런 고민의 산물이다.
독특한 후계자 선정법을 고안해 성공했던 나라들이 더 있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패권국을 자처했던 베트남 쩐 왕조(1225~1400)는 상황(上皇) 제도를 초기부터 정착시켰다. 황제는 때가 됐다고 생각할 때 스스로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자기는 상황으로서 불교 수행에 진력하면서 후계자의 병풍이 됨으로써 계승 분쟁이 일어나는 것을 차단했다. 쩐 왕조는 세 차례에 걸친 몽고의 침입을 막아냈다.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유일하게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던 타이(태국)도 독특한 후계제도를 지녔다. 아유타야(1350~1767) 왕국에서는 왕이 생전에 왕자들 가운데 한 명을 계승권자로 임명해 부왕(副王)으로 삼았다. 계승 분쟁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오랫동안 왕조가 유지됐다.
로마의 황제들도 같은 이유로 후계자를 공동황제나 부황제로 임명해 자신의 재위 때 권한을 대폭 위임했다. 아우구스투스는 양자 티베리우스에게 감찰관 겸 호민관 권한을 주고, 속주 및 군대에 관해서도 자신과 똑같은 권한을 부여하는 법을 만들기도 했다.
어느 경우나 능력있는 후계자를 고르고 검증하는 게 문제였지만, 제왕 시대에는 오로지 왕의 몫이었다. 로마시대 타락한 황제에 대한 암살 등이 자주 있었던 것은 원로원이 무력화된 뒤 후계자 선택을 황제에게만 맡겨뒀던 탓도 있을 듯싶다.
대선 후보 검증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후보끼리 하자느니 당이 하자느니 언론이 해야 한다느니 말들이 많다. 주권자인 국민 ‘누구나’ 후보 검증을 할 수 있는 게 민주주의다. 그것도 철저하고 광범위하게.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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