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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승자독식 사회와 톨레랑스의 주검 / 우석훈

등록 2007-01-31 17:15수정 2007-01-31 17:17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야!한국사회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는 많이도 변했는데, 이 시스템을 가장 쉽게 표현하는 말이 ‘승자독식’이다. 승자가 모든 것을 다 갖는 시장에서의 경쟁을 극대화시키고, 그 대신 패자들에게는 내일은 없다는 메시지가 시대정신이다. 홉스가 ‘만인에 의한 만인의 전쟁’을 멈추기 위해서 사회계약이 등장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던 최초의 얘기를 염두에 둔다면, 시장이 발달할수록 전쟁도 줄고 경쟁도 부드러워져야 하는데, 한국을 살펴보면 갈수록 경쟁이 극대화된다. 성장담론은 경제성장을 하면 그 과정에서 소외된 사람을 전체가 보살펴주겠다는 것인데, 한국의 성장담론은 패자에게 너무 가혹하다. 이기면 되지 않느냐? 물론 이기면 되지만, 게임에서 모두가 승리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지는 사람에게 준비된 패자부활전 같은 것도 없다. 일단 비정규직으로 인생을 시작한 20대에게 주어지는 것은 가혹하고도 뻔한 미래밖에 없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10대에 벌어지는 첫번째 경쟁에 모든 것을 걸게 되고, 50년 동안 한국 사회가 곱게 유지해 온 대학입시라는 운명의 심판자 역할은 극한에 이르게 된다. 그걸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옥의 트라이앵글’이라고 부른다. 제도의 균형이라고 본다면, 이 입시경쟁은 한국 사회에서 ‘진화적으로 안정성’을 가지고 있고, 해체되기는커녕 더 강화되는 중이다. 이걸 잠시 완화시킨 사람은 역설적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이고, 그런 이유로 청소년들이 전두환을 지지한다고 하면 기성세대들은 할 말이 없을 것 같다.

이 지옥의 현장에서 <교육방송>이라는 기관이 하고 있는 구실이 두 가지 있다. 가난한 청소년들에게도 최소한의 형평성을 보장하기 위한 청소년 교육, 그리고 패자부활전을 치를 수 없는 성인에 대한 평생교육에 대한 최소한의 기회가 그 소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 가장 강력한 승자독식제를 운영하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교육방송>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렇게 설명이 된다. 즉, 지금보다 열 배는 많은 돈을 들여서 <교육방송>의 질을 높이는 것은 지옥처럼 펼쳐진 한국의 승자독식 시스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이다. 이 정도도 안 한다면, 가난한 집안의 청소년들은 정말 옴짝달싹할 도리가 없고, 경쟁에서 밀려나 집안에 갇혀 있는 성인들에게 패자부활전 가능성은 아무것도 없다. 이 작은 문마저 닫아버리면, 대한민국은 부자들만의 천국이고, 민중들에게는 지옥과 같은 시스템이 된다.

이 삭막한 한국에서 교육 이념으로 ‘똘레랑스’를 외롭게 외치던 <교육방송>의 간판 프로그램 ‘똘레랑스’가 2월 말 방영을 끝으로 문을 내린다. 시청률이 낮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건 교육 논리에서 ‘관용’이 사라지는 상징적 사건이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를 지옥으로 한 발 더 가깝게 만드는 사건이다. <교육방송>마저 승자독식의 논리로 무장하면, 이 사회는 지옥이 된다. 공중파 한 구석에서 ‘똘레랑스’라는 등대의 불마저 꺼버리면서 도대체 <교육방송>이 얼마나 더 돈을 벌 수 있는가? 가난과 소외의 마지막 등대를 꺼버리지 않기를 희망한다. 희망은 돈으로 거래하는 것이 아니고, 등대는 어두울 때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 꺼져가는 등대에 할 수 있는 말은 한 마디다. 똘레랑스에 관용을, 교육에 희망을 …. 제발 이상한 돈의 논리로 마지막 등대를 <교육방송>이 짓밟지 말기를 바란다. 계산 똑바로 해보면, <교육방송>의 시장논리는 사회의 지옥화라는 막대한 부대비용을 지급하게 된다. 똘레랑스는 승자독식 한국 사회의 마지막 안전판이고, 우리가 배워야 할 ‘제도’다.

우석훈/성공회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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