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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주거기본권의 정립 / 김용창

등록 2007-02-07 17:40

김용창/서울대 교수·지리학
김용창/서울대 교수·지리학
나라살림가족살림
통계청이 낸 국정감사 자료에 근거해서 심상정 의원(민주노동당)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인구주택 총조사’ 결과 지하방에 무려 58만6649가구 141만9784명, 옥탑방에 5만1139가구 8만776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거처 종류별 조사에서는 4만5237가구 10만9512명이 판잣집·비닐집·움막·동굴 등에서 살고 있다.

너도 나도 비싼 주택의 세금 부담에 정신을 쏟는 사이 주거 극빈층이 68만가구 160만명에 이르고, 그 93%가 수도권에 몰렸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수도권은 주택투기의 ‘엘도라도’인 동시에 이들의 주거 기본권이 상실된 지역이기도 하다.

일찍이 엥겔스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것이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오직 한 가지 방식만을 가지고 있는데, 바로 끊임없이 새로운 주택문제를 낳는 방식으로 해결한다고 비꼰 바 있다. 그래서 자기집 갖기를 촉진하는 정책이 노동자들에게 사회안정을 가져다 준다는 삭스를 비판하면서, 당대 개량주의자들의 해결책은 노동계급의 구원책도 아니며 결국은 실패할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파국과 대망을 논쟁하기에 앞서 사회경제 발전과 더불어 새로이 나타나는 주택문제에 끊임없이 응전하는 것 또한 인간으로서 실천적인 숙명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데 갖추어야 할 기본 권리로서의 시민권이라면 통상 공민권·정치권·사회권을 말한다. 사회권이 국가나 국민의 사회적 책임, 교육·소득·보건·주택 등과 같은 사회 서비스에 대한 권리를 의미한다고 볼 때, 주거권은 사회권의 아래 개념으로 쉽게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부쩍 자주 등장하는 주거복지 개념이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거복지에 대한 논의는 주택(주거)에 대한 사회적 권리를 강조하는 개념이지만, 사회적으로 희소한 자원에 대한 사회경제적 청구권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주장의 문제점은 사회경제적 청구권이 그 성격상 다툼(경합)을 내포하고 있기에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대가로 편익을 얻어야 한다는 논리를 깔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의 주거권은 인간존재로서의 근본 권리나 보편적 권리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경제성장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정책을 펼 가능성이 높다.

1948년 유엔은 ‘세계인권선언’ 제25조에서 “모든 사람은 의·식·주 및 필수적인 사회서비스를 포함하여 자신과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적절한 생활수준을 향수할 권리를 갖는다”고 선언하였다. 이 선언이 미국의 요청으로 만들어졌고 냉전체제 아래서 정치적 편의주의에 따라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비판도 받았지만, 현대사회를 사는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로서의 주거권을 일찌감치 들춘 것이다.

주거 기본권은 사회경제적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편익을 희생하여 얻어야 하는 상대적인 권리도 아닌 공민권 수준에 버금가는 권리로 세워야 한다. 즉 개인의 자유와 해방에 필수적인 권리인 공민권에 상응하는 권리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주택을 늘 상품으로만 바라보고 계산하려는 좁은 시각을 벗어나 주거복지 정책에 대한 불필요한 사회적 논쟁과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독재정치와 빈곤으로부터 탈출하는 동시에 민주주의 국가로 발전하고 1인당 소득 3만 달러를 목표로 달려가는 한국 사회가 지하층·움막·동굴 거주자를 방치하고 삶의 무능력자라는 낙인을 찍어 개인의 문제로 돌린다는 것은 인권국가의 모습이 아니다.


김용창/서울대 교수·지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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