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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유연한 진보와 한-미 FTA / 유종일

등록 2007-02-21 17:20수정 2007-02-22 11:27

유종일/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유종일/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나라살림가족살림
현재 스코어는 0 대 2. 이제 후반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미 패색이 짙다. 그러나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한다면 무승부를 이루어 연장전으로 갈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 대표팀의 주장 노 선수는 또다시 우리 편 골을 향해 드리블을 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관중들의 야유 소리가 높아간다. 한편 아직도 남아 있는 소수의 노란악마들은 ‘노 선수 파이팅’을 외치며 목청껏 응원을 해댄다. 어쨌든 노 선수는 금방이라도 우리 골을 향해 슛을 날릴 태세다. 그리 되면 경기는 끝이다.

이 경기는 참으로 이상한 경기다. 대표팀 선발 경쟁에서 비교적 무명이었던 노 선수가 우여곡절 끝에 인기 절정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주전 스트라이커 자리를 꿰찼을 때만 해도 국민들은 기대에 부풀었고 힘껏 그를 응원했다. 그런데 본경기가 시작되자 노 선수는 자꾸만 볼을 우리 편 골을 향해 몰고 갔다. 상대방의 저항이 거센 탓도 있으나, 어떤 때는 아예 상대편 방향으로 진격할 생각조차 하지 않고 반대로 공을 차기도 했다. 그러니 경기가 제대로 풀릴 까닭이 없다. 경기 시작 직후 노 선수의 자책골로 0 대 1로 뒤져 나갔다. 재벌개혁과 금융개혁 등 개혁정책을 포기해 버리고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 운운하면서 성장지상주의에 굴복한 것이다. 추가 골은 후반전 중반 상대 팀의 총공세에 밀려 내주고 말았다. 나름대로 저항도 했으나 공을 빼앗아 역습에 나서려는 의지는 없이 그저 상대 팀의 전진을 조금 방해하는 정도로만 수비를 하다 보니 결국 골을 허용하게 되었다. 이 두 번째 골은 부동산 정책의 실패다.

경기의 흐름은 상대 팀이 지배하고 있었지만, 우리 팀도 때론 완강한 공격을 펼치기도 했다. 특히 부동산 골 허용 후에는 전의를 다지고 열심히 공격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런데 이제 경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왔다. 노 선수가 한-미 자유무역협정 골을 우리 편 골대를 향해 쏘아버릴지 아니면 마지막 순간에 위험지역 바깥으로 차낼지 조마조마한 순간이다. 관중들이 항의한다. 도대체 왜 우리 편 골대를 향해 가느냐고. 처음엔 심판을 탓하고 상대 수비가 너무 거칠다고 변명했다. 그렇다고 거꾸로 가서야 되겠느냐는 질책에 답이 걸작이다. “공격을 꼭 상대 팀 골에 대고 해야만 하느냐. 유연하게 생각하면 공격을 우리 쪽에 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전술적 유연성을 발휘해서 백패스를 하는 것과 엉뚱하게 우리 편 골을 향해 슛을 날리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유연한 진보, 좋은 말이다. 그러나 방법론이 유연해야지 원칙과 가치 자체를 유연하게 휘어버려선 안 된다. 경제개혁과 집값 안정 모두 대선 공약에서 강력하게 주장한 것이었는데, 이를 저버린 것은 결코 유연한 방법론이라 할 수 없다. 적극적인 개방, 반드시 해야 한다. 자크 아탈리의 말처럼 신유목주의 시대가 오고 있다. 우리나라 진보세력의 상당수가 개방에 소극적인 것은 문제다. 그러나 개방을 추진함에 있어서도 원칙과 가치는 지켜야 한다. 이 점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은 무척 버거운 과제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나 약값 적정화 방안 등과 관련하여 공공정책의 자주적 결정권이라는 원칙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 충분한 대비책도 없이 금융시장, 농산물시장 등을 과도하게 열어 대다수 국민의 경제적 향상이라는 가치를 저버려서도 안 된다. 그러자면 낮은 수준의 자유무역협정으로 타결 짓는 것이 최선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 신중론은 개방 반대론이 아니다. 오히려 유연한 개방론이다. 무조건 개방이 아니라 원칙과 가치를 지키면서 유연하게 접근하자는 것이다. 그야말로 유연한 진보의 입장이다.

유종일/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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