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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멘 / 정남구

등록 2007-02-27 18:03

정남구 논설위원
정남구 논설위원
유레카
1776년 미국 독립을 논의하는 대륙회의에 참가한 존 애덤스에게 아내 아비게일 애덤스는 이런 편지를 보냈다.

“당신이 만드는 새로운 법률에서는 부디 여성들을 잊지 마시고, 조상들보다는 좀더 관대하고 호의적으로 배려해주시기 바랍니다. (중략) 우리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거나 우리의 대표가 참가하지 않은 상태에서 만들어진 어떤 법률의 구속도 우리는 받지 않을 것입니다.”

대륙회의에 참가한 대표자들이 만든 미국 독립선언서는 “모든 인간(all men)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유명한 구절로 민주공화제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존 애덤스는 아내의 진지한 요청을 선언서에 담지는 못했다. 선언서의 ‘인간’(men)에는 북미 원주민과 아프리카계 미국인, 그리고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곧 드러났다. 미국 헌법이, 투표권을 누구에게 줄지를 개별 주에 위임한 것이 사태를 더 꼬이게 했다.

흑인의 시민권은 남북전쟁을 거치고 노예제가 폐지된 뒤인 1869년 수정헌법 제14조를 비준하고서야 인정됐다. 그 뒤로도 남부의 일부 주는 흑인의 투표를 방해하는 악의적인 인두세 조항을, 1964년 수정헌법 24조가 금지할 때까지 유지했다. 여성은 참정권을 얻기 위해 1919년 수정헌법 19조가 하원에서 한 표 차로 가까스로 통과될 때까지 싸워야 했다. 길게는 두 세기에 걸친 투쟁의 결과, 독립선언서의 ‘men’은 ‘백인 남성’만을 뜻하던 것에서 ‘persons’(사람)으로 바꿔 읽어도 좋은 것으로 변했다.

여성 회원들의 참정권을 부정해 온 서울기독교청년회(YMCA)가 한국기독교청년회 전국연맹에서 최근 제명됐다. 제헌 헌법에서부터 남녀를 불문하고 동등한 투표권을 준 나라에서, 서울 기독교청년회 지도부가 여지껏 고리타분하게 ‘멘’의 뜻을 해석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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