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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체로키 흑인 / 김종철

등록 2007-03-06 17:42수정 2007-03-06 17:53

김종철 논설위원
김종철 논설위원
유레카
1526년 현재의 사우스 캐롤라이나주 동쪽에 위치한 스페인 정착지에 노예로 잡혀와 있던 아프리카 흑인 한명이 탈출했다. 미국 대륙 최초의 노예 탈출이다. 그는 인근 인디언족의 보호를 받았다. 영국의 초기 식민지였던 제임스타운이 1622년 인디언들에게 습격당해 파괴됐을 때 백인들은 살해됐으나 흑인들은 도리어 풀려나 인디언들과 어울려 살았다.

미국 중동부 지역 등에 거주하던 체로키족과 플로리다의 세미놀족 등 5개 부족은 백인 문화를 재빨리 받아들여 개화된 인디언족으로 불렸다. 특히 체로키족은 독자적인 표음 문자를 만들어 신문을 발간했으며, 플랜테이션 목화 농장을 경영하기도 했다. 체로키 농장의 흑인들은 노예 신분이었다. 당시 100명 이상의 흑인 노예를 소유한 가족도 있었다. ‘잘 나가던’ 체로키족도 결국 백인들에게 땅을 뺏기고 오클라호마로 강제로 쫓겨갔다. 1838년 가을부터 1839년 봄까지 이어진 유명한 ‘눈물의 행로’(The trail of tears) 도중 무려 4천명의 체로키족이 숨졌다.

남북전쟁 뒤인 1866년 미국 중앙정부와 체로키족이 맺은 협약에 따라 체로키의 흑인 노예가 해방됐다. 해방 흑인 외에 당시 체로키족과 결혼해서 살던 자유 흑인도 있었다. 모두 합해 대략 1천명쯤 됐다고 한다. 이들은 그후 대부분 준자치정부인 체로키 부족국가(Cherokee Nation)의 일원으로 살아왔다.

체로키 부족국가는 며칠 전 주민투표에서 76%의 찬성으로 흑인들의 부족원 자격을 박탈했다. 지난해 체로키 부족연방재판소가 흑인들의 부족원 자격을 인정한 것을 다수의 힘으로 뒤집었다. 세미놀족도 2000년 투표로 흑인을 구성원에서 내쫓았다. 카지노 운영권을 회수하겠다는 연방정부의 압력으로 세미놀족은 자신들의 결정을 결국 취소했다. 두 부족에 ‘개화’가 더 필요한 것 같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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