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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참을 수 없는 평등주의 / 신종원

등록 2007-03-07 17:41

신종원/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신종원/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나라살림가족살림
3년 전 서울의 대중교통 체계에 큰 변화가 있었다. 버스개혁을 하자면 종사자들의 급여와 복지 수준을 높여야 하고, 새로운 체계 도입에 따른 투자 등으로 상당한 비용이 들어간다는 것이 고민거리였다. 버스요금이 한꺼번에 20% 이상 크게 올랐고, 지하철로 한 번에 멀리 다니던 경우는 30% 이상 올라 말들도 많았다. 그러나 당시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그 요금 인상안에 동의하였다. 관심사였던 완전한 환승 무료 제도가 도입되었기 때문이었다.

버스 체계 개편 전, 대중교통 요금을 더 많이 부담해 온 쪽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이거나 교통이 더 불편한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마을버스로 시작해 버스나 지하철을 갈아타고 목적지에 가야 하는 사람들은 꼬박꼬박 요금을 별도로 냈기 때문에 대중 교통요금은 갑절이 들었다. 한편 지하철 한 번으로 목적지에 갈 수 있는 사람들은 먼길을 빨리 가면서도 요금은 적게 부담했다. 서울 강남 등 부유한 동네가 교통도 편한 경우가 많아, 잘사는 사람들이 더 싸게 대중교통을 이용해 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대중교통을 싸고 편하게 이용할 권리는 시민의 기본권적 성격으로 볼 수 있다. 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산다는 이유로 출근이나 등교에 비용을 곱으로 부담하는 것은 정의에 반한다.

정부의 많은 정책 가운데 보수 언론과 지식인들이 공격하는 단골 메뉴의 하나가 정책이 좌파적이라거나 반시장적 평등주의라는 것이다. 이런 공격들은 단순히 정부 비판용만은 아니고 전체 사회를 겨냥한 선동이기도 하다. 주택공급 확대에 초점을 둔 시장주의를 선택하지 않고 세금으로 칼날을 부자들에게 들이대는 평등주의 정책이었기에 부동산 정책이 실패했다거나, 교육정책도 평등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의료제도를 개혁하자고 하면 사회주의 의료나 의료 평등주의가 양질의 의료를 가로막는다고 비판한다. 집값을 끌어내려 집 없는 사람들 기 펼 수 있게, 의료의 공공성을 좀 확대해 가난한 사람도 큰병 수술하느라 가산을 탕진하는 일 없도록 하자는 데 이견은 없을 듯한데, 평등주의를 빗댄 비판은 집요하고 완강하다.

5년 전 핀란드의 노키아 부회장이 과속으로 당시 11만6천유로(약 1억3천만원)의 벌금을 냈다는 얘기가 화제가 됐다. 교통위반에 지나친 벌금이랄 수 있겠지만 벌금을 소득에 비례해서 내는 것이 상식인 사회에서는 그저 당연한 일일 뿐이다. 연간 수억원을 버는 사람이나 차량 행상으로 하루 하루 살아가는 사람이나 같은 교통위반 범칙금을 내야 하는 평등주의를 참을 수 없다. 수십억원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연간 1천만~2천만원의 세금을 세금폭탄이라고 저항하는 평등주의도 그러하다.

형편이 나은 사람들이 사회적 부담을 좀더 지자는 것은 일종의 시민적 합의다. 그러나 이 정신을 구현해내는 일은 저항도 만만찮고 그리 쉽지 않다. 모두의 형편을 꼭 같이 기계적으로 평등하게 만들 수는 없다. 경제·사회적 형평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하면서도, 경제적 격차와 부담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고 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람들의 형편에 맞게 좀더 여유로운 사람들이 세금도 더 내고, 여러 가지 사회적 부담을 더 많이 지도록 하는 것이 좋다. 차등해서 여유로운 계층에 사회적 부담을 더 지우는 걸 두고 ‘가진 자에 대한 증오’로 몰아붙이는 일은 이제 그만하자. 그동안 평등주의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 온 분들이 이제 이런 부당한 기계적 평등주의를 바꾸는 데 관심을 돌려주길 바란다.

대선의 해, 새롭고 정의로운 사회의 설계가 필요한 때다.

신종원/서울YMCA 시민사회개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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