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칼럼
중금속 중독은 치명적이다. 납은 빈혈을 일으키거나 말초·중추신경계를 파괴한다. 수은은 뇌와 신장 등을 망가뜨리며(미나마타병), 카드뮴은 심폐기능 부전이나 간장·신장 장애를 일으키고(이타이이타이병), 구리는 간과 신장을 파괴한다. 방사성 오염 식수나 공기는 위암 혹은 폐암을 유발하고, 다이옥신은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기형아 출산을 가져온다. 이런 위험성 때문에 성숙한 국가와 공동체일수록 중금속 중독 예방과 치료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개인적 취향으로 말미암은 게임·도박 중독 등 다른 중독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이보다 더 치명적인 중독이 있다. 정치적 중독이다. 이 중독을 두고선 국가나 공동체가 예방과 치료에 나서지 않는다. 오히려 국가를 움직이는 집단들이 앞장서 조장한다. 물론 신경·신장·간 등 신체를 망가뜨리지는 않는다. 그것이 마비시키는 것은 도덕적 판단력이나 진실과 정의의 감수성이다. 인격 장애, 곧 광기를 유발하는 것이다. 특히 수백 수천만명의 유권자를 일시에 중독시킨다는 점에서 치명적이기도 하고 망국적이다.
정치적 중독이라는 말을 처음 쓴 이는 유감스럽게도 일본 군국주의의 이데올로그였던 도쿠토미 소호였다. 그는 <조선통치 요의>에서 조선을 정치적 중독 상태로 규정했다. 조선 정치사는 음모와 정쟁이 뒤얽힌 붕당싸움으로 일관되었으며, 조선이 이런 중독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일본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병탄을 정당화하려는 억설이다. 그런 이 말이,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정치적 중독은 선거를 통해 일어난다. 다른 중독과 달리 간헐적으로 나타난다는 게 다행일 뿐이다. 지금 우리는 다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극단적 중독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이명박씨의 법정 증인 매수 의혹을 둘러싸고 나타난 판단력과 감수성 마비 현상은 상징적이다. 폭로대로 그가 불리한 증인을 외국으로 빼돌리고, 유리한 증언을 위해 재판 때마다 증인에게 돈을 줬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근본을 파괴하는 중대 범죄에 해당한다. 지지·거부를 떠나 그런 사람이 나라를 이끈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러나 진실을 밝히려는 노력은 없다. 이른바 음모론 따위만 횡행한다.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 등이 연루된 엑스파일 사건, 고위 공직자들을 선거판에 동원하려 했던 초원복국집 사건 등 때도 그랬다. 엄격한 진실규명과 처벌로 근본을 바로세우는 계기로 삼아야 했지만, 정치적 중독은 허깨비를 두고 다투는 음모론 공방으로 내몰았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예술론을 뒤집는 이른바 ‘소격 효과’를 문예이론에 적용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작품이 갖춰야 할 조건으로 통일성, 보편성과 필연성, 감정이입 및 자기 동일시 등을 꼽았다. 작가는 독자들이 작중 인물과 자신, 작품 내용과 현실을 동일시하게끔 작품을 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브레히트는 현실을 당연시하게 만드는 억압적 양식이라고 비판했다. 대신 독자가 작품 내용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도록, 작품으로부터 일정 거리 떨어져 낯설게 보도록 작품을 구성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정치인은 선전 홍보 활동을 통해 유권자로 하여금 후보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도록 만들고자 애쓴다. 그래야 유권자는 그가 무엇을 주장하고 무슨 행동을 하든 진실 또는 정의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불리한 주장이나 사실은 조작 혹은 음모로 매도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권자가 지지자를 선택하는 건 의무이자 권리다. 그러나 중독은 피해야 한다. 지지하는 후보라 해도 한 걸음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진실이 보인다.
논설위원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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