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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한-미 FTA, 민심은 어디에? / 유종일

등록 2007-03-16 18:20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나라살림가족살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애초에 우려했던 대로 예정된 길을 따라가는 것 같다. ‘투자자-국가 소송제’나 지적재산권 등에서 미국의 요구에 끌려가고 있으며, 금융·농업·방송·통신 등 민감한 분야의 시장 개방도 미국에 내줄 건 거의 다 내주는 쪽으로 협상이 흘러가는 것 같다.

우리가 그나마 얻을 수 있는 분야라고 내세웠던 자동차, 섬유, 무역구제, 개성공단 등의 사안에서도 거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막바지 고위급 협상만을 남겨둔 시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실익이 없으면 안 할 수도 있다는 뜻을 밝혔지만, 그간의 협상 진행과정을 보건대, 이는 협상내용을 호도하고 엉터리 협상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속셈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게 중론이다.

애초부터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은 매우 비대칭적이었다. 한국과 미국의 경제력과 협상력이 비대칭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협정의 실익 면에서도 미국이 얻고 우리가 잃게 될 것은 구체적이고 분명한 데 반해, 우리가 얻게 될 것은 무엇인지 매우 추상적이고 불확실하다. 미국한테 이 협정이야 일반 국민들은 관심도 없는 작은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사활이 걸린 문제다. 회의적인 미국에 대해 우리는 스크린쿼터 축소 등으로 성의를 표시하며 협정을 맺자고 매달렸다.

사정이 이러니 협상 과정에서 최대한 현명하고 집요하게 우리 이익을 관철시켜도 균형 잡힌 결과를 얻기 어려운 판인데, 우리 정부의 태도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미국은 의회에서 “이런 것은 절대 내 줄 수 없다”거나 “이것을 못 얻어내면 비준은 없다”는 협박을 하고 미국 협상단은 강경한 의회의 주장을 협상 무기로 십분 활용하는데, 우리 국회는 무관심하기 짝이 없고 우리 정부는 반대여론을 억압하는 일과 근거 없는 장밋빛 전망을 선전하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니 협상에서 우리 쪽이 밀릴 수밖에 없다. 처음부터 협상 과정을 취재해 온 한 기자는 소감을 묻는 내 질문에 “이렇게 철저하게 일방적으로 밀리기만 하는 협상도 있을 수 있느냐”며 억울함에 목이 멘듯 말끝을 잊지 못했다.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찬성여론이 반대여론보다 많다고 주장하지만 민심은 다른 것 같다. 정부의 집요한 선전 공세에도 민초들은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본인이 진행하는 〈문화방송〉 라디오의 ‘손에 잡히는 경제’에서는 매주 수요일 설문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목요일에 발표한다. 이번주의 주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이었다. “이대로 협정이 체결되면 내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과반수인 53.7%가 자신에게 불리할 것이라고 답한 반면,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9.3%에 불과했다. 국민경제 전체에 미치는 가장 큰 영향을 묻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43.5%가 “피해를 보는 계층들의 반발로 사회적 갈등이 커질 것이다”라고 답하고, 31.4%는 “양극화가 더 심화될 것이다”라고 답하여 무려 74.9%가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긍정적인 견해는 “산업 전반에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다”라는 응답 등 모두 합해서 19.6%에 불과했다. 이 조사는 비록 무작위 추출된 표본에 입각한 과학적 조사는 아니지만 그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민심의 현주소를 잘 반영하는 조사라고 본다. 표본 수도 2000명 정도로 많고, 극도로 낮은 응답률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는 전문 여론조사에 견줘서도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다고 생각지 않는다.

백번 양보해서 참여정부의 정책 실패는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중차대한 사안에서 민의를 거스르는 길만은 가지 않기를 바란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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