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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만주어 / 김종철

등록 2007-03-20 18:03

김종철 논설위원
김종철 논설위원
유레카
청나라 융성기의 황제였던 강희제는 지방관이나 주둔 장군들로부터 받던 비밀 보고서인 주접을 한자가 아닌 만주어로 쓰도록 했다. 한번은 제독 리린성이 자신은 눈이 침침하고 만주어 문법이 서툴러 만주어로 주접을 쓸 수 없고, 만약 누군가가 대신 쓴다면 제대로 자신의 생각이 표현되지 않을 것이라고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한문으로 주접을 올렸다. 이에 강희제는 “그렇다면 이 한문 주접 역시 그대가 직접 썼을 리 없다”고 리린성을 질타했다.

청나라의 지배층인 만주족은 한족에게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를 보급하고자 갖은 애를 썼다. 변발을 강요하고, 관학을 세워 만주어를 가르치고 관리등용 시험 때도 만주어를 장려했다. 특히 만주인이 문관이 되려면 반드시 만주어와 몽골어의 번역 시험을 보도록 했다. 자칫 한족에게 흡수돼 민족의 동질성을 잃을까 우려해서였다. 한자와 만주문자가 함께 적혀 있는 현판을 자금성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강희제 시대에 이미 황실에 있던 만주인들의 대부분이 만주어보다는 중국말에 더 능통했다. 집단 거주지인 만주를 떠나 베이징 등 각지로 옮겨 간 만주족은 적은 인구로 물리적으로는 300년 가까이 한족을 지배했지만, 결국은 한족에게 점차 녹아들었다.

현재 중국에 살고 있는 만주족은 대략 1천만명에 이른다. 이 중 만주어를 일상적으로 구사하면서 생활하는 사람은 겨우 18명이라고 한다. 헤이룽장성의 작은 마을인 싼자쯔(일명 일란보)의 나이 많은 만주인들이다. 지방정부에서 몇 해 전부터 이 마을 초등학교에 만주어반을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고 있지만, 만주어가 완전히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조선조 말기부터 만주 일대에 이주해 살고 있는 재중동포는 200만명이 채 안 된다. 그들이 우리말과 글, 문화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 새삼 돋보인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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