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남구 논설위원
유레카
우리나라에서 권투경기가 공식 대회로 처음 열린 것은 1927년이었다. 와이엠시에이(YMCA) 체육부에서 권투를 배운 30여명의 선수가 출전해 그동안 닦은 실력을 한번 기록으로 만들어보자는 뜻이었다. 그런데 정식으로 권투를 배운 적이 없는 수포교의 유명한 건달 김창엽이 밴텀급에 출전해 화제가 됐다. 첫 상대는 김충성 선수였다. 1라운드는 막상막하였다. 하지만 김창엽은 2라운드 1분20초 만에 주먹으로 맞고 링 밖으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김창엽은 규칙이 정해진 권투경기는 막싸움과 다르다는 걸 미처 몰랐다. 권투는 주먹만 써야 하고, 상대의 벨트 아래를 치면 안 되는 등 규칙이 있다. 또 선수간 신체 조건의 차이를 고려해 체급별로 경기를 한다. 이런 규칙에 맞게 실력을 키우려고 선수들은 특별한 훈련을 한다. 무거운 글러브와 헤드기어를 낀 채 스파링 경험을 쌓는다.
우리나라가 칠레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을 때, 정부는 칠레를 첫 상대로 고른 이유를 ‘스파링 파트너’로 적당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는 중국, 일본과 더불어 자유무역협정을 하나도 맺지 않은 나라였다. 스파링 경험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 뒤 우리나라는 싱가포르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었고, 아세안과도 협정이 타결돼 비준을 앞두고 있다. 이제 세 번쯤 스파링 경험을 쌓은 셈이다.
그런 우리 정부가 미국과 벌이고 있는 자유무역협정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협상 과정이나 결과는 꼴이 우습다. 스파링 몇 번 한 아마추어 플라이급 선수가 노련한 헤비급 챔피언에게 덤빈 모양새가 돼 가고 있다. 치욕을 당한 김창엽은 그 뒤 정식으로 권투를 배워, 1934년 마닐라에서 열린 제10회 극동선수권대회에서 동양챔피언에 올랐다. 김창엽에게는 다음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자유무역협정은 한번 맺고 비준을 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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