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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FTA가 우리 건강에 미치는 영향 / 서홍관

등록 2007-04-02 18:06

서홍관 /국립암센터 의사·시인
서홍관 /국립암센터 의사·시인
야!한국사회
우려했던 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타결되었다. 부문별로 상황이 다르지만 의약품 분야는 최악의 상황이 아닌가 싶다.

전염병이 중요한 질병 목록에서 사라지면서 새로이 등장한 질병은 고혈압, 당뇨병, 암, 동맥경화, 심장질환 등의 만성질환들이다. 이런 질병들은 수년 또는 수십 년 동안 우리 몸에 나쁜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치료기간도 한두 달에 그치지 않고 거의 평생 치료를 해야 한다. 약 자체를 장기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약을 개발하더라도 이 약이 효과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으면 장기적인 임상시험이 따라야 한다. 즉 ㄱ이라는 고혈압 약제를 만들었을 때 이것을 5년간 먹었더니 기존의 고혈압 약에 비해 사망률이 낮아지고 심장병과 뇌졸중이 더 줄었다는 연구결과가 있어야 우리는 이 약을 받아들이게 된다.

따라서 새로운 약제 하나 개발하는 데 걸리는 평균 기간이 무려 20년으로 늘어나고, 신약 한 종의 평균 개발비용도 대략 1조원이라고 한다. 또한 수백 또는 수천 가지 화학물 중에서 한두 가지 약만 시판에 성공할 정도로 위험부담이 큰 산업이 제약산업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제약기업의 현실은 어떠한가? 직원 수가 30명 미만인 제약회사의 비율이 무려 63%에 이르며, 상장 기업 37곳의 연구개발비를 모두 합쳐도 2005년 기준으로 3천억원 남짓하기 때문에 신약을 개발한다는 것은 극히 어렵다.

1999년 이후 우리도 신약을 몇 품목 개발하였는데 그 명세서는 자못 비참할 지경이다. 지난 8년간 열다섯 품목이 허가를 받았으니, 일년에 두 품목도 안 되는 셈이다. 이런 환경에서 그나마 우리 제약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길이 대략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외국에서 개발한 특허가 끝난 약(복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이런 약들은 화학성분이 이미 알려져 있기 때문에 저예산으로 개발이 가능하고 특허권 사용료도 지급할 필요가 없다. 또 하나의 전략은 이미 개발된 약에 작은 화학적 변화를 줌으로써 비슷한 효능을 가진 새로운 약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 방식으로 성공할 경우에 이는 신약으로 등재되어 특허권까지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운만 좋으면 효자 품목을 만들 수도 있다.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를 변형한 발기부전 치료제가 국내 ㄷ제약회사에서 개발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런데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은 이런 두 가지 방식 모두에 찬물을 끼얹었다. 우선 신약의 특허기간을 연장했다. 따라서 우리는 복제품을 만들 수 있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늦어지고 결국 국민들이 비싼 특허권료를 오랫동안 물어야 할 것이다. 또한 특허권을 가진 외국 제약회사는 신약의 특허기간 동안 신약에 대한 정보 독점권을 유지한다고 한다. 신약 특허가 만료된 뒤에야 신약에 대한 정보를 공개한다는 뜻인데, 결국 복제품이나 변형제품을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아서 특허기간이 만료되어도 몇 년 동안은 싼 복제품을 쓸 기회를 박탈당한다.

이제 자유무역협정 타결로 국민 의료비 상승에 따른 국민건강권 침해는 불보듯 환하게 되었다. 정부가 이번 협정으로 이익을 보는 자동차나 섬유 분야 등 특정 업계의 이득을 국민의료비에 투입하여 개개인의 의료부담을 낮추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국민적인 저항을 피할 길 없을 것이다.

고령화사회가 될수록 산업에서 식량의 비중은 낮아지고 의약품의 비중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미국 쪽이 이번 협상 과정에서 자동차와 섬유를 양보하면서 슬그머니 의약품을 챙긴 것이 어떤 의미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뼈저리게 느낄 것 같다.


서홍관 /국립암센터 의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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