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현 /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야!한국사회
말랄라이 조야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들이 투표권을 행사했던 2005년 최연소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여성 정치인이다. 군벌들의 테러위협 속에서 진행된 그녀의 선거 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행복의 적들〉은 이번 여성영화제 화제작 중 하나였다. 오랜 기간 지속된 전쟁과 가난, 억압적 관습과 법률, 거기에 탈레반 정권이 물러간 자리를 차지한 정치 세력의 인권탄압까지 더해져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삶은 전쟁을 방불하게 했다. 게다가 여성은 남성 허락 없이는 외출도 할 수 없고, 강간과 폭력이 일상화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부르카를 쓰지 않고는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려운 사회에서 여성이 정치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내가 영화제 쪽에서 마련한 대담에 참석한 건 바로 그러한 의문 때문이었다. 내가 그녀에게서 받은 인상은 정치인이라기보다는 투사에 가까운 것이었다. ‘핍박받는 민중과 여성의 대변자’로 ‘행복의 적들’과 싸워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고 다짐하는 그녀는 놀라울 정도의 확신과 강단을 보여주었다. 지속적인 강간과 살해의 위협에 대해 한치의 흔들림 없이 “내 목숨을 앗아갈 수 있어도, 진실은 결코 숨길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는 진정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전사와도 같았다.
하지만 나는 조야를 보면서 아쉬움과 불편함을 느꼈다. 그녀에게서 아쉬웠던 것은 전사형 리더에게서 흔히 발견되는 ‘성찰성’의 결여였다. 물론 여성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목숨을 건 싸움을 해야 하는 절박한 현실에서는 그녀처럼 투쟁적이고 강한 전사형 리더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당신과 함께 신념을 공유하고 고생하고 있는 동료들에 대해서 말해 달라”는 질문에 ‘동료’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이 “나의 지지자는 민중”이라고만 대답하는 그녀에게서 ‘나만이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는 정답을 알고 있다’는 독선의 위험성을 읽었다. 자신이 국민의 목소리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지, 자신의 힘이 악용될 가능성은 없는지, 자신이 민주주의에 진정 기여하고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지 않는 정치는 위험하다.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동력을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태도는 정치인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태도가 아닐까.
또 하나, 내가 불편함을 느낀 대목은 조야라는 여성 정치인의 이미지가 소비되는 방식이었다. 애초에 조야가 정치에 뛰어든 것은 군벌 청산과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서였다. 그녀에게 여성이 겪는 폭력과 강제결혼과 같은 인권 문제는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의 일부이지 전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서구 언론은 조야라는 인물을 이슬람 사회에서 억압받는 여성 해방의 상징 혹은 영웅으로만 재현하고 있었다. 여성 리더십을 연구하는 학자 주희진씨는 여성의 정치 세력화가 갖는 의미를 ‘성찰적 리더십’과 관련하여 설명한다. 그녀는 여성들의 약자로서의 경험, 즉 마이너리티로서의 일상적 체험이 리더 자신의 지위와 경험, 책임과 역할을 성찰하도록 하는 훌륭한 자원이며, 이러한 성찰성이야말로 여성 정치인의 파워를 좀더 효과적이고 올바른 방향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밑거름이라고 말한다. 여성 정치인에게 대안적 리더십을 기대하는 것도 단지 그녀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사실 혹은 소수자로서의 경험 때문이 아니라, 성찰적 리더십의 실천 가능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위치를 억압 받는 민중의 구원자로 설정하고 있는 조야, 그리고 이런 조야를 낭만적으로 미화하는 시선은 공통적으로 한 가지 중요한 사실, 성찰성 없는 정치인은 자신 스스로 ‘행복의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놓치고 있다.
권수현 /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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