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홍관/국립암센터 의사·시인
야!한국사회
세 살짜리 아이가 간질 때문에 약국에서 환약을 복용하다가 호흡곤란으로 생명이 위독한 상태에 빠졌다는 보도가 있었다. 아이는 급성 수은중독으로 진단되었는데 환약에 주사(朱砂)라는 수은화합물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그 환약에서는 3만4800ppm이라는 높은 농도의 수은이 검출되었다.
어떻게 해서 어린이에게 수은과 같은 위험한 중금속이 투약될 수 있었을까? 놀랍게도 식약청 규정을 보면 식물성 한약재에 대해서는 중금속 허용기준이 있지만 광물성 한약재에 대해서는 독립된 규정이 없다고 한다. 따라서 이 환약은 ‘합법적인 처방’이었다는 것이다. 식약청에 문의한 결과 제약회사에서 제조하는 경우에는 의약품에 수은화합물을 금지하고 있는데 한약사나 한의사가 제조하는 경우에는 특별한 규제 조항이 없다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부작용 없는 약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어떤 약이 개발되어 국민들에게 사용되기 위해서는 그 효과는 물론이고 안전성까지도 입증되어야 한다. 식약청의 ‘의약품 등의 안전성·유효성 심사에 관한 규정’을 보면 양약의 경우에는 약의 개발 경위, 물리화학적 성질 및 생물학적 성질, 안정성에 관한 자료, 독성에 관한 자료, 약리작용에 관한 자료를 모두 제출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한약제제에 대해서는 같은 법규 제2조에 규정한 ‘한약서’의 원리에 따라 심사한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 거론된 한약서의 조건은 ‘약성 및 처방이 공용되어온 정평있는 한약서’라고 되어 있는데 <동의보감>, <본초강목>, <수세보원> 등 11종의 한약서가 구체적으로 거명되어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가끔 동의보감의 명성을 과신한 나머지 마치 지금도 그 처방을 그대로 써도 되는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17세기의 동의보감은 당대에는 동양의학을 집대성한 대단한 책이었다고 해도 현대에도 가감 없이 받아들여도 되는 책은 결코 아니다. 동의보감에는 우리나라 국민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우황청심원에 대한 처방이 있는데 수은화합물은 물론이고 맹독성 물질인 비소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당연히 현재 시판되는 우황청심원에는 이런 성분은 빼고 제조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한약재를 허가받을 때 효과나 안전성에 대한 자료를 따로 제출할 필요 없이 동의보감에 기재되어 있으면 허용되는 시대착오적인 규정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규정의 잘못으로 인해 한약의 안전성은 위협받고 있다. 보도를 보면 의약품 공인 시험기관인 랩프런티어와 인하대의 조사 결과 전국 한의원 264곳 가운데 76곳에서 처방한 한약에서 수은과 납 등 부적절한 성분들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약재도 현재 인류의 지식에 맞추어 다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은 명백하다. 천동설을 믿던 17세기 조상들의 지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조상 보기에도 부끄러운 일이다. 허준은 당대의 중국 의서들을 망라하고 자신의 경험을 살려 동의보감을 기록했고 이 의서는 중국에서도 애용될 정도로 정평이 있었다. 그러나 당대에 획기적인 의서라고 해서 지금 그대로 믿고 따르는 것에는 큰 무리가 따른다. 아무리 이순신 장군이 당대 제일가는 해군 제독이요 전함 제조에서 최고봉이었다 하더라도 지금 군함을 만들면서 거북선을 만들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서홍관/국립암센터 의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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