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논설위원
유레카
“어떤 사람이 귀족의 눈을 빼냈다면 그의 눈도 빼낼 것이다.” 기원전 1750년께 만들어진 함무라비 법전 196조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이다. 구약성서 출애굽기에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다.
이 생각 때문이었을까.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술집에서 눈 주위를 맞고 온 둘째아들이 “경찰에 고소하겠다”고 하자, “철없는 소리 하지마라. 남자답게 행동하라”며 아들을 데리고 직접 가해자 색출에 나섰다. “내 아들 눈을 때렸으니 너도 눈을 맞으라”고 김 회장이 청계산 건물 공사장에서 직접 때렸다고 술집 종업원들은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아들도 용기를 얻은 듯 북창동 술집에서 아버지 앞에서 종업원을 폭행했다고 한다. 이른바 ‘눈에는 눈’ 식 보복이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은 경찰 조사에서 완전 모르쇠다. 청계산에는 간 적도 없으며, 북창동 술집에서도 폭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단다. 당사자 진술 말고는 특별한 물증이 없기에 자백은 ‘철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함무라비 법전의 ‘눈에는 눈’ 조항은 개인적인 보복 행위를 허용한 게 아니다. 상응하는 복수가 아니라 나라와 사회가 폭력행위에 대해 그만큼 엄하게 처벌한다는 의미다. 사적인 복수와 흉악 범죄를 막는 장치다. 성서 구절도 마찬가지다. 당시 올리브 나무 하나를 베면 상대방의 재산 전체를 빼앗으려는 등의 일이 많아 배상을 타당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오히려 과다하고 감정적인 복수를 금하는 경구다.
맞은 만큼 개인이 보복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범죄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벌을 받지 않고 빠져나간다면 정의는 무너진다. 돈과 힘 있다고 두 번씩이나 사회 정의를 우롱해선 안 된다.
김종철 논설위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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