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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곽병찬 칼럼] 슬픈 해안선

등록 2007-05-04 17:42수정 2007-05-04 18:45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논설위원
곽병찬 칼럼
목공의 눈은 미친 대추나무에서 지팡이를, 느티나무 등걸에서 찻상을 찾아낸다. 로댕이 돌덩어리에서 생각하는 사람을 발견하고 캐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상상력은 예술가에게만 허용된 게 아니다. 인문학은 물론 과학이나 공학에서도 탐구의 기본은 직관과 상상력이다. 다윈의 진화, 뉴턴의 중력,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등 위대한 과학적 발견도 그 결실이다.

정치도 예외는 아니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황무지에서 일자리를 창출했고, 세종대왕은 어린 백성을 위한 나랏 말의 기본을 하늘 땅 사람에게서 찾았다. 최근 가장 자주 거론되는 사례는 두바이 통치자 셰이크 모하메드다. 우리 언론도 그의 신화창조를 경쟁적으로 연재했고, 정치인들은 그와의 만남을 훈장처럼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뉴턴의 사과, 다윈의 ‘핀치의 부리’처럼 모하메드를 자극하고 상상하게 한 것이 무엇인지 천착하지 않았다.

1995년 모하메드가 왕세자로 즉위할 때만 해도 두바이는 유일한 자원인 석유가 2020년이면 고갈되리라는 전망 때문에 나라 전체가 암울했다. 국토의 90%가 사막이고, 연간 강수량도 150㎜에 불과했다. 살만한 곳이라곤 해안의 좁은 땅뿐이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고민하던 모하메드의 눈을 끈 것은 해안이었다. 사실 달리 눈을 돌릴 곳도 없었다. 두바이가 인접한 페르시아만은 오이처럼 긴 바다로, 호르무즈 해협이 방파제 구실을 하고 있어 지중해와 비교되곤 한다. 해안의 야자수 그늘은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모하메드의 결론은 명료했다. 해안선을 늘리자! 그곳에 중동의 관광 물류 금융의 중심을 건설하자. 두바이는 아프리카 중동 유럽 중앙아시아 인도 오세아니아로 이어지는 중심에 위치해 있으니, 그런 꿈을 꿀 수는 있었다. 문제는 해안선을 어떻게 늘리느냐는 것이었다. 두바이의 해안선은 72㎞에 불과했다. 고민하던 그에게 답을 준 것은 야자수였다. 야자수를 해변에서 바다 쪽으로 눕힌 모양의 섬을 만들자. 크고 무성한 나뭇잎 하나 하나가 해안선을 이룬다면, 공간이 좁더라도 해안선은 최대한 늘릴 수 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됐거나 조성 중인 것이, 8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팜 주메이라, 팜 제벨 알리, 팜 데이라이다. 300여 개의 인공섬을 세계지도 모양으로 만드는 ‘더 월드’도 있다. 이것이 완성되면 해안선은 1500㎞로 는다. 조성된 해안에는 기상천외한 디자인과 기능의 건축물이 속속 들어선다. 팜 주메이라의 빌라와 빌딩은 이미 분양이 끝났다. 축구선수 베컴도 빌라를 사들였다.

두바이에서 우리에게로 눈을 돌리면 참담해진다. 사실 우리의 서남해만큼 아름답고 비옥하고 굴곡진 해안선은 별로 없었다. 수려한 풍광, 다양한 생태, 풍성한 수산자원만으로도 우리는 가난하지 않았다. 그러나 토목형 정치인과 관료들이 시종일관 산을 깎고 바다는 메우고 해안선은 밀어버린 결과, 빛나는 우리의 보석은 거의 다 파괴되었다. 인천의 자연해안선은 단 1㎞만 남았다. 황해도 장산곶과 태안반도 사이의 경기만 해안선은 1990년 2617㎞에서 2005년 1416㎞로 줄었으며, 자연해안선은 60여㎞만 남았다. 이곳의 어획고가 10여 년 사이 70%나 준 것은 파국적 경고의 하나일 뿐이다.

제식훈련 하듯 획일화된 해안선은 꿈을 꾸지 못한다. 서식, 산란지가 없어졌으니 물고기는 사라지고, 습지가 사라졌으니 새들은 오지 않는다. 눈부신 모래와 검푸른 해송이 어울리던 백사장은 사라졌고, 기암절벽은 골재가 되었다. 그러고도 정치인들은 연안개발특별법을 제정해 남은 자연해안선을 없애려 한다. 아름다워서 더 슬픈, 우리의 해안선.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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