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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야!한국사회] 성폭력 괴담은 이제 그만! / 권수현

등록 2007-05-07 18:01

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야!한국사회
어린 시절 친구들 사이에서 빨간마후라 괴담, 각종 귀신 괴담이 돌면서 세상이 무서워져서 귀갓길에 혼자 다니지 못하고 여럿이 모여 다녔던 기억이 있다. 최근 또 다시 한 어린이가 성폭력을 당한 뒤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어린이 성폭력은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부모와 교사들 사이에게도 가장 강력한 괴담의 반열에 올랐다. 어린이들은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하면 안 되나요?” “저 아저씨도 나쁜 사람이에요?”라는 질문을 던지고, 보호자들은 내 아이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 휩싸인 채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몰라 당혹감을 느낀다. 어린이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언론들은 일제히 앞다투어 그 사건의 흉악함을 강조하고, 학교에서는 서둘러 어린이들에게 성폭력 예방 교육을 실시하느라 부산을 떨기도 한다. 그러나 성폭력에 대한 오해와 그릇된 전제에서 출발한 성폭력 예방 교육은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

어린이 성폭력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첫째, 어린이 성폭력은 위기관리와 안전의 문제다. 성폭력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여러 가지 크고작은 일상적 위기들 중 하나다. ‘모르는 사람과는 절대 이야기하지 말고’ ‘누가 길을 물어봐도 절대 가르쳐주지 말라’는 등 불특정 다수에 대한 공포감을 주입하기보다는 길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따라가서는 안 되며, 어른이 도움을 요청하더라도 어린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여 자신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도록 지도해야 한다. 성폭력이 ‘어린 천사’를 희생시키는 ‘인간 짐승’이 저지르는 일이라는 식의 괴담의 차원으로 남아 있는 한, 이러한 관점에서의 성폭력 예방 교육은 어린이들에게 세상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만 안겨줄 뿐 일상에 만연한 성폭력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력을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둘째, 예방의 책임을 어린이에게 두어서는 안 된다. 또한 “어린이나 부모가 성폭력을 예방할 수 있다”는 그릇된 전제에서 출발한 성폭력 예방 교육은 피해 어린이와 부모에게 자책감과 죄의식을 안겨주고, 문제의 조기 발견과 적절한 대응을 방해할 수 있다. 성폭력은 피해자나 보호자가 예방하기 어려운 문제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피해자가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 어린이는 가해자가 흉악해 보이는 낯선 사람이 아니라 주변 사람일 경우, 혹은 물리적 협박이 아니라 선물이나 회유 등의 수단을 이용할 경우 이를 ‘폭력’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 성폭력에 대한 대처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조처는 누구든 피해 상황을 빨리 인지하여 더 이상 피해가 지속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교육에서 강조되어야 할 부분은 어린이나 보호자가 피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보다는 피해가 발생했을 때 어린이와 보호자가 어떻게 이를 빨리 인지하여 피해를 중단시키는가이다. 즉 어린이 성폭력 ‘예방’의 핵심은 초기 발견과 대응 태도를 통한 피해 확산의 방지인 것이다.

어린이는 피해 사실을 말했을 때 주변에서 잘 믿으려하지 않거나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받아들일 경우 더 큰 상처를 입는다. 그러나 우리가 어린이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음을 인식하고, 어린이에게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든지 도움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다면, 위험천만한 우리 사회에서도 어린이는 ‘잘’ 살아갈 수 있다. 그러한 조건은 사회 전체가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사고를 바로잡고, 문제 발생에 대한 적절한 대응 능력을 갖출 때 가능하다.

권수현/한국여성민우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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