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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나라살림가족살림] 나무의 일생과 사람의 일생 / 강수돌

등록 2007-05-09 17:56

강수돌/고려대 교수, 조치원 신안1리 이장
강수돌/고려대 교수, 조치원 신안1리 이장
나라살림가족살림
셸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보면 나무는 아이에게 놀이터나 휴식처가 된다. 아이가 크면 나무는 과일을 준다. 또 나중엔 집이나 배를 만들 목재도 준다. 모두 잘려나간 뒤 소박한 그루터기가 되어선 힘없는 늙은이에게 멋진 쉼터가 된다. 이렇게 나무는 우리의 ‘어버이’처럼 아무 조건 없이 평생 모든 걸 내 준다. 어버이날에 나무를 떠올리는 까닭이다.

차윤정씨의 <나무의 죽음>을 보면, 오래된 숲 속 나무는 약 200년 넘게 살아 있는 동안 우리에게 많은 선물을 주지만 200∼300년에 걸쳐 죽어가는 긴 과정에서도 숲을 포함한 온 생태계에 쉼없이 준다. 나무의 겉껍질은 장수풍뎅이나 사슴벌레 같은 딱정벌레에게 좋은 음식이 된다. 작은 구멍은 훌륭한 벌레집이 되고 그 애벌레를 잡아먹는 딱따구리들에게 좋은 사냥터가 된다. 딱따구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부리로 균사 같은 걸 나무에 옮긴다. 나무의 상처에서 나오는 수액은 벌, 개미, 나비, 나방에게 좋은 음료수다. 이렇게 전체 숲 생물종의 약 30%가 죽은 나무 한 그루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산다.

바로 여기서 나무의 일생과 사람의 일생을 견주면 몇 가지 흥미로운 점을 볼 수 있다.

첫째, 나무는 죽어가면서 온갖 동물에게 양식이 될 뿐아니라 살아 있을 때 저장했던 양분을 모두 숲으로 되돌린다. 그런데 사람들은 평생 모은 자산을 오로지 자기 가족 또는 자식에게만 물려주려 한다. 오래된 숲의 나무는 일종의 ‘사회 상속’을 하지만, 사람들은 대개 ‘개인 상속’에 그친다. 만약 우리가 나무를 본받아 모두 사회 상속을 한다면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미래는 한결 희망적일 터. 그렇게 되면 맞벌이 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없어 방문을 걸고 나갔다가 불이 나는 바람에 애들이 죽는 일도 없을 것이고, 한겨울에 노숙자가 전화박스 옆에서 얼어 죽는 일도 없을 게다. 또 그런 생각이 널리 퍼지면 ‘모든 후손이 나의 후손’이기에, 최근 어느 재벌 회장처럼 ‘자기’ 아들을 위한 ‘보복 폭력’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까닭도 없다.

둘째, 나무는 살아서 성장하는 과정이나 죽어가는 과정이 무척 더디고 길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는 동안 무엇이든 서둘러 이루려 하고, 죽고 나면 하루빨리 효율적으로 ‘처리’되고 만다. 나무는 삶과 죽음이 모두 생명 활동으로 통일되어 있지만, 사람은 삶과 죽음이 나눠져 있다. 그래서 나무에게는 죽음조차 행복한 생명 활동이지만, 사람에게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다. 만약 우리가 나무를 본받아 죽음조차 행복한 생명 활동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 자신의 삶 또한 조급함이나 집착이 없이 더불어 건강한 것으로 채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

셋째, 나무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온갖 동식물들에게 밥도 되고 집도 되고 옷도 되어 준다. 나무와 더불어 사는 모든 동식물은 어느 것 하나 쓸 데 없는 것이 없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것도 제각기 중요한 구실을 한다. 자연스럽게 다양하고 풍요로울 수밖에. 그런데 사람은 ‘돈벌이’를 위해 ‘인재’만 키우려 드는 바람에 다양한 가능성이 획일적으로 변하게 된다. 점수나 성과로 드러나지 않는, 삶의 다른 풍성한 면들은 억압받기 쉽다. 그러니 미국 콜럼바인 고교나 최근 조승희의 총기 난사 사건처럼 불행한 일이 자꾸만 생긴다.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 숲>이 주는 조용한 메시지처럼, 사람들이 나무를 닮아 더불어 커다란 숲을 이루고, 나아가 서로서로 쉼없이 선물을 주는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 순 없을까?

강수돌/고려대 교수, 조치원 신안1리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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